‘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일생동안 도박빚에 시달렸다. 오죽하면 도박빚에 쫓겨 쓴 책이 ‘노름꾼’이었을까. 혹자는 이런 시련이 명작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도박중독만 아니었으면 더욱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교수·경찰청 사이버안전 자문위원 |
청소년은 마음 놓을 곳이 없다. 질풍노도의 감정 동요에 휩쓸리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주변인’으로서 잠재된 불안은 극단적 사고로 연결되기 쉽다. 특히 입시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서 불안은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이를 해소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학교나 학원은 물론, 부모에게도 고민을 풀어놓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은 다른 무엇인가에 의지하려 한다. 그 대상은 아이돌이거나 게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박이 가져다주는 중독성 있는 쾌감은 그 무엇보다 불안을 지워내고, 깊게 파고들어 의지의 대상으로 미화된다. 모바일 메신저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매일 도박 광고를 접하는 청소년의 화제는 ‘도박 무용담’과 ‘사이트 공유’로 수렴된다.
청소년 도박을 일시적인 탈선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나 크다. 최근 일부 청소년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범죄의 길로 빠지기도 하며, 병원에는 중독 치료가 필요한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일까.
최근 경찰청에서는 사이버도박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집중단속과 함께 전문가로 구성된 ‘사이버안전자문단’을 위촉해 관련 정책수립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다각적인 노력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노력만으로 도박 근절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관련 기관이 사이버도박 근절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면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건전한 놀이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부모는 공부하라는 훈계 대신, 그들의 고민에 귀 기울여 도박과 같은 중독거리를 찾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을 처벌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씁쓸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건전한 성인으로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이버도박으로 시들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나무는 묘목일 때부터 사람이 애정을 쏟은 만큼 크고 곧게 자란다고 한다. 우리의 관심이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교수·경찰청 사이버안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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