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가스 기준치를 속인 것으로 나타난 폴크스바겐뿐 아니라 다른 유명 자동차 회사의 디젤 차량도 실제 도로 주행시 발생하는 배기가스가 실험실 허용 기준치보다 10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둔 독일자동차연맹(ADAC)이 유엔이 개발해 실제 주행 상황을 더 많이 반영한 WLTC 방식으로 배기가스를 측정한 결과, 상당수 디젤 차량이 유럽연합(EU) 기준보다 10배 이상을 방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조사에서 쓴 WLTC 방식은 EU 현행 방식(NEDC)보다 실제 주행 상황에 가까워 오는 2017년부터 EU에서 적용될 예정이다. 총 79종 가운데 기준을 가장 많이 초과한 차량은 닛산의 X-트레일 1.6으로 질소산화물이 허용기준치의 14배에 달했다.
르노의 '에스파세 에너지 dCi 160'은 11배를 뿜어냈고, 같은 회사의 '그랜드 시닉' '캐드자'(Kadjar)도 최대 배출 차량 상위 10위 안에 포함됐다. 지프의 레너게이드 2.0은 10배, 현대자동차의 i-20와 피아트 500x 1.6, 시트로앵 DS5 하이브리드 4 등은 최소 6배가 넘었다.
르노와 현대차 대변인은 "유럽의 제반 규정과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만 말했고 다른 자동차 업체는 논평을 거부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러나 조사 차량 79대 중 25%가량은 현행 기준(NEDC)에 맞았다. 볼보의 S60 D4은 배출 기준 질소산화물량이 14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볼보사는 "이 실험은 해당 차량에 결함이 있는 게 분명한 만큼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의 속임수를 밝혀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피터 목 국장은 "ADAC 연구라면 믿을 만하다"면서 "이번 일이 생길 것이라는 자료가 충분히 있었고, 많은 전문가도 알고 있었을 것인 만큼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심정이 착잡하다"고 토로했다.
유럽의회에서 EU 대기 관련 법안의 수석 협상 대표인 캐터린 비어더 의원은 "ADAC의 결과는 디젤 배기가스 스캔들이 자동차 산업에 전반에 확산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 사안은 소비자 기만에다가 나쁜 공기로 매년 수천명이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과도 연관된 만큼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환경단체 '교통과 환경'(T&E)은 ADAC가 쓴 WLTC 기법이 실제 주행 상황을 최소한도 범위로 반영했다면서 EU가 속히 WLTC 기준을 적용하는 한편 차량 제조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실험 장소를 선택하는 관행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독일 폴크스바겐이 디젤차량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으로 미국 등지에서 잇따른 소송에 휘말린 데 이어 한국에서도 소비자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법무법인 바른에 따르면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브랜드의 경유차를 소유한 2명이 폴크스바겐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국내 딜러사 등을 상대로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이번 배기가스 조작 사태와 관련해 국내에서 소송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고의 소송 대리인인 바른은 소장에서 피고들이 소비자인 원고들을 속였다면서 "민법 제110조에 따라 자동차 매매계약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바른은 "피고들의 기망행위(속임수)가 없었다면 원고들은 제작차 배출허용 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는 자동차를 거액을 지불하고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매매계약이 소급적으로 무효가 됐으므로 피고들은 원고들이 지급한 매매대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이 구입한 차량은 각각 2014년형 아우디 Q5 2.0 TDI와 2009년형 폴크스바겐 티구안 2.0 TDI으로 가격은 6100만원과 4300만원이다. 또 원고 측은 구입 시점부터 매매대금에 대한 연 5%의 이자도 반환하라고 덧붙였다.
폴크스바겐은 배출허용 기준을 회피하려고 EA 189엔진이 탑재된 차량에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했고 인증시험 중에는 저감장치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일반주행 상태에서는 저감장치의 작동을 멈춰 대기환경보전법 기준을 초과하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한다고 바른은 주장했다.
바른은 소장에서 "피고들이 이를 숨긴 채 '클린 디젤'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해 적은 배출가스로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휘발유 차량보다 연비는 2배 가량 좋고 시내 주행 시 가속 성능이 훨씬 낫다고 광고해 이를 믿은 원고들로 하여금 동종의 휘발유 차량보다 훨씬 비싼 프리미엄을 지불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가에 차량을 구입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원고 측은 주위적 청구원인인 부당이득 반환과 함께 예비적으로 각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예비적 청구는 주된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바른은 "원고들은 '클린 디젤'의 프리미엄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받지 못했다"면서 "대기환경보전법상의 배출허용 기준을 충족하게 하려면 차량의 성능을 저하시키고 연비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어 추가적 손해를 입게 됐다. 또 브랜드 가치가 훼손돼 중고차 구입 수요가 급감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 제기로 폴크스바겐의 디젤차 배기가스 조작에 대한 국내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하종선 바른 변호사는 "폴크스바겐 사태 이후 국내에서 소송이 제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원고를 추가해 소송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을 리스 방식으로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소프트웨어 장착 차량은 2009년부터 국내에 약 14만6000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폴크스바겐 ▲골프 ▲제타 ▲비틀 ▲파사트 ▲티구안 ▲폴로 ▲CC ▲시로코 등 약 11만대와 아우디 ▲A3 ▲A4 ▲A5 ▲A6 ▲Q3 ▲Q5 등 3만5000대다.
이에 대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측은 이번 사태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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