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아침 육아휴직 3년차 아빠 김영수(44·가명)씨는 일어나자마자 세 살 터울의 남매가 덮고 잔 이불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들어 아이들이 자다가 ‘실례’를 하는 일이 잦아 수시로 이불을 빨아대야 했다. 어떤 날은 네 번이나 이불 빨래를 해야 했다. 아내는 일찌감치 일터로 나갔다. 오전 7시30분쯤 작은딸(4)이 눈을 뜨며 아빠를 찾았다. 딸을 씻기고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1시간30분이 훌쩍 지나갔다. 그 때쯤 아들(7)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아들을 씻긴 뒤 아빠와 아이들은 오붓한 아침을 즐겼다.
아내 대신 한다고 하지만 집안 꼴은 말이 아니다. 수시로 청소하지만 아이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다. 아뿔싸, 김씨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딸아이가 두 손으로 눈가를 감싸며 자지러지듯 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장난을 치던 오빠가 던진 책이 얼굴에 맞았다. 아들은 이틀 전에도 사고를 쳤다. 이웃집 형들과 장난을 치다가 문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날 밤늦게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 세 바늘을 꿰매야 했다. 병원에 다녀온 김씨는 저녁이 되기 전에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김씨의 하루는 직장생활 이상의 긴장과 피로의 연속이다. 그래도 김씨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기 그지없다.
여성·문화네트워크에 따르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대상 남성 직원의 절반 가까이(48.1%)가 “직장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웠다”고 응답했다. 직장에서 아예 육아휴직 신청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응답도 24.9%에 달했다. 공직사회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우리 기업문화는 남성 육아휴직 제도 자체가 뿌리내리기 힘든 풍토인 셈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자의 비율은 올 상반기 전체 육아휴직 근로자의 5.1%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5%대에 이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기간 전체 육아휴직자 수는 3만7373명에서 4만3272명으로 15.8% 늘어났다. 갈 길은 멀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내년에 복직할 예정이다. 그러면 김씨 부부의 육아 고민은 또 시작된다. 육아휴직 제도만으론 충분치 않다. 김씨는 “맞벌이 부모들에겐 육아휴직 제도 강화 못지않게 자녀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