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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역사교과서 "김일성 축지법…김정은 세살 때 사격"

입력 : 2015-10-14 10:22:31 수정 : 2015-10-14 10: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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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일본지도 까맣게 칠했더니 일본이 암흑천지"
서옥식 박사 '북한 교과서 대해부' 출간 예정…"날조실태 고발"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을 계기로 북한 교과서의 왜곡 실태가 관심을 끈다.

북한의 역사 교육이 돌연 주목받는 것은 정치권에서 공론화했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한국사 검정교과서 일부가 북한 주장을 여과 없이 서술한 것을 넘어 "친북 사상을 퍼뜨리는 숙주"라고 비판했다.

야권에서는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발행되면 북한처럼 역사 왜곡이 벌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북한 교과서는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를 극단적으로 미화했다. 심지어 항일투쟁사도 왜곡하는 등 '날조의 표본'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서옥식 초빙연구위원이 11월 출간할 예정인 저서를 보면 북한의 역사 날조 사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북한 교과서 대해부-역사와 정치사상교육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이 책은 북한 교육도서의 왜곡 실태를 분석하고 고발했다.

연합뉴스가 저서를 미리 입수해 북한 교과서 내용의 백태를 살펴봤다.

◇ "하늘이 낸 옥동자 백두밀영에서 출생"…김정일 출생지 조작

북한의 중학교 5학년 사상교육서 등 교과서들은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이곳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조직인 조선인민혁명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김정일을 '백두산의 아들', '하늘이 낸 옥동자' 등으로 치켜세우며 "탄생 소식이 인민들에게 조국광복의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고 일제 놈들에게 커다란 공포와 불안을 주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일본 관동군과 만주군의 문서, 옛 소련정부 기록 등에 따르면 김정일은 북한이 주장하는 1942년 2월 16일이 아니라 1941년 같은 날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 하마탄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일본군 토벌대의 공격으로 패주한 김일성이 1940년 10월 소련에 들어간 뒤 저우바오중(周保中) 휘하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1년 반 가량 야영생활을 하던 곳이다.

서 위원은 "북한이 김정일 출생지를 백두밀영(白頭密營), 출생일은 1942년 2월 16일로 조작한 것은 김정일을 '백두산의 아들'로 만들어 김일성 왕조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백두밀영은 해방 당시 함남 혜산군에 있었는데, 북한은 이곳이 1936년 9월 꾸려진 뒤 해방 때까지 조선혁명 사령부가 있었으며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하던 중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서 위원은 "100% 날조된 주장으로 백두밀영 자체가 실재하지 않았다"고 바로 잡았다.

북한의 소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황당하고 비과학적인 내용도 있다.

김정일이 어머니 김정숙과 함께 어느 소학교에 둘러 세계지도에 조선과 일본이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을 보고 먹으로 일본땅을 새까맣게 칠했더니 갑자기 일본 전역이 암흑천지가 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는 게 대표 사례다.

서 위원은 "'그런 얘기가 있었다더라'가 아니라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사실인 것처럼 단정했다"고 소개했다.

◇ 고교 참고서 "김정은 3살 때 총 쏘고 운전 시작"

고급중학교(고교 과정) 학생에게 김정은의 '위대성'을 체득시키기 위해 집필했다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참고서'에서도 대를 이은 신격화는 계속된다.

"3살 때 총을 쏘았고, 9세 때는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키며 100% 통구멍을 냈다.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도 되기 전엔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몰고 질주했다. 초고속 보트를 시속 200㎞로 몰아 외국 보트회사 시험운전사를 두 번이나 이겼다."

신격화 대상의 원조는 김일성이다.

서 위원은 "교과서를 비롯한 주민 교육용 교재 등에는 김일성이 항일 무장 투쟁 시절 모래로 쌀을,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으며 축지법을 쓰는가 하면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넜다는 황당한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10살도 안 된 나이에 일본 헌병을 혼내주고, 용마(龍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돌사태를 내려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대목에 이르면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 

◇ 김일성 항일투쟁사 왜곡 셀 수 없어…"조선노동당 창건까지 날조"

황당무계한 김씨 3대의 유년 시절 신화는 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항일투쟁의 역사 등 해방전후사를 왜곡한 대목에서는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김일성이 1930년대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고서 유격대를 조직,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정작 중국공산당의 공식 자료에는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

김일성이 1932년 반일인민유격대를 창설했다거나 이를 모태로 1934년 조선인민해방군을 창설했다는 북한 측 주장을 중국 자료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서 위원은 "김일성이 회고록에서 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조직은 이영배라는 인물이 조직한 '안도반일인민유격대'를 자신이 만든 것처럼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 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의 모태라며 북한군 창건일을 종전의 1948년 2월 8일에서 1932년 4월 25일로 바꾼 뒤 매년 이날을 창군기념일로 지켜오고 있다.

또 북한 역사서 등에는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최초의 공산당조직으로 '건설동지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도 허구라고 서 위원은 지적한다.

그는 "김일성은 해방 전까지 조선공산당의 당원이 된 일이 없는 인물인데 이처럼 당 창건을 날조하는 행위를 벌여왔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소속 동장영이라는 인물이 지휘한 '소왕청전투'를 김일성이 한 것으로 조작한 중학교 4학년용 혁명역사 교과서도 있다. 서 위원은 "북한 주장대로라면 이 전투는 보천보전투의 수백수천배에 달하는 전과라 할 수 있지만 소왕청방위전투는 두 차례 모두 중국공산당 동만특위(東滿特委) 서기 동장영이 지휘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처럼 교과서와 지도서 등에서 보편적인 한국근현대사를 김일성 개인의 혁명역사로 바꿔버리고,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은 없애버리거나 없던 내용을 새로 만드는 방법으로 역사를 짜깁기했다.

소학교는 '사회주의 도덕'(종전 공산주의 도덕)과 '조선역사' 과목 외에 김일성·김정일·김정숙·김정은의 유년시절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학습시키고 있다. 초급중학교에서도 사상교육 목적의 과목들과 함께 김일성 일가의 혁명활동을 필수 과목으로 배운다.

고교 과정인 고급중학교에서는 '사회주의 도덕과 법', '조선역사', '현행당정책' 과목을 배우며 김씨 일가의 혁명역사를 학습하고, 대학에서는 주체철학·혁명역사·체정치경제학을 학과에 관계없이 공통과목으로 이수한다.

특히 김정은의 어린시절·혁명활동·혁명역사 과목은 김정은 체제 등장과 함께 단계적으로 신설됐다.

서 위원은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유일영도체제를 확립하고 불안한 정세를 다잡으려고 안간힘을 써온 북한이 사상교육과 주민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대한 왜곡·날조 사례 중 몇 가지만 살펴봐도 북한이 교과서와 참고서, 지도서 등을 통해 끊임없이 3대 독재 세습체계를 미화하고 근현대사를 왜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 위원은 "한민족 5천년의 역사를 착취와 피착취의 계급투쟁으로 기술하고 근현대사를 김일성 가계의 혁명역사로 바꾼 북한의 날조 실태를 조목조목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서 위원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북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연합뉴스에서 북한부장과 편집국장을 지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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