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도봉구에 사는 A(76)할머니는 전화 통화 속 자신을 우체국 직원이라 소개한 남성의 이 말만 믿고 그간 모은 노후자금 전부인 1746만원을 냉장고에 넣어뒀다. 이후 돈을 대신 맡아주기 위해 집을 방문한다던 우체국 직원을 기다리다 또다시 그 남성의 전화를 받아 “일단 근처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 급한 할머니는 “열쇠는 우편함에 놓고 갈 테니 우리집에 오고 있는 직원에게 전해달라”고 말한 뒤 바로 주민센터로 향했다. 그러다 미심쩍은 마음에 인근 파출소를 찾아 상황을 설명한 할머니는 곧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냉장고 속 노후자금은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간 뒤였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이같은 수법의 보이스피싱 사기에 가담한 대학생 구모(19)군 등 2명을 구속하고 김모(19)군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6일까지 총 5차례에 걸쳐 1억2975만원을 훔친 혐의(특수절도 등)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구군 등은 중국 유학 중 알게 된 이로부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있는데 한 번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중국 모바일 채팅 앱을 통해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의 일명 ‘실장’, ‘팀장’ 등의 지시를 받아 피해자의 주거지에 침입해 현금을 갖고 나오는 역할을 맡았다. 피해자 집 인근에서 대기를 하다 채팅 앱을 통해 집 주소 등을 전달받으면 택시를 타고 이동해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갖고 나온 돈을 조직 내 환전책에게 전달했고, 피해 금액 중 1% 정도를 나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가담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은 주로 70세 이상 노인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국세청, 검찰청, 경찰청 등 공공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속인 뒤 즉시 현금을 인출해 냉장고, 장롱, 세탁기, 침대 밑 등에 보관하라는 식의 수법을 썼다.
경찰은 현재 환전책 등 다른 조직원들을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노후자금을 잃게 된 피해 노인들이 모두 큰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며 “피해 예방을 위해 다양화된 보이스피싱 범죄 유형에 대한 인식 확산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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