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유니폼 넘버, 4번의 주인공>
◇ "나는 이세상에서 가장 행운아"라며 끝까지 겸손했던 '철마' 루 게릭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선수들은 등번호 4번을 달 수 없다.
바로 루 게릭(1903년 6월 19일~1941년 6월2일)이 달았던 번호였기 때문이다.
루 게릭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영구결번제도가 시작됐다.
▲ 가장 미국적인, 가장 양키적인 루 게릭
루 게릭은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맨이다.
잘생긴 미국 백인인데다 아이비리그인 명문 컬럼비아 대학을 다닌 엘리트였다. 또 근면, 성실, 자기희생을 강조하는 청교도 정신에 가장 부합한 인물이었다. 무려 2130경기에 빠짐없이 출전해 철마(The Iron Horse)라는 별칭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치의 병에 걸려 은퇴, 38살에 요절하는 등 드라마틱한 삶 등 미국인이 사랑할 수 밖에 요소를 모두 갖춘 주인공이다.
▲ 루 게릭의 발자취
가난한 독일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루 게릭은 어린시절부터 남다른 운동능력을 과시했다.
축구, 미식축구, 농구, 체조, 야구 등 거의 모든 운동에 빼어난 실력을 보였으며 1921년 명문 컬럼비아대학에 야구가 아닌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루 게릭은 1923년 시즌 중반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 스카우트됐다.
1923년 6월 15일 대타로 처음 경기에 나선 루 게릭은 처음 두 시즌 동안 주로 대타로 나서야 했다.
1925년 6월 1일 유격수 폴 웨닝거를 대신에 대타로 나섰던 루 게릭은 다음날인 6월 2일 두통을 앓던 주전 1루수 윌리 핍을 대신해 선발출전했다.
이후 1939년 4월 30일까지 단 한경기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
1925년 6월 1일부터 1939년 4월 30일까지 213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은 56년이 지난 1995년 9월 5일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깨졌다.
하지만 루 게릭 시절 한시즌 155경기, 칼 립켄 주니어는 한 시즌 162경기, 스포츠 의학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점 등을 볼 때 루 게릭이 더 위대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루 게릭은 통산 2164경기 출장, 타율 .340, 홈런 493, 안타 2721개, 타점 1995개를 기록했다.
▲ 영화와 같은 스스로 출전 포기
루 게릭은 1938년 중반부터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1938년 시즌 타율이 13년만에 2할대(0.295)로 떨어졌던 루 게릭은 1939년 4월 30일 워싱턴 세너터스(지금의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통산 2130번째 연속출장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경기가 없었던 5월 1일 지난 다음날인 5월 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원정경기 시작된 루 게릭은 매카시 감독에게 "오늘은 벤치에서 쉬겠다"고 했다.
깜짝 놀란 매카시는 마지못해 허락을 하면서 "1루수는 항상 루 게릭의 몫이다"며 "다시 경기에 출장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라"고 했다.
루 게릭이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는 사실에 디트로이트 관중들은 깜짝 놀라 오랫동안 기립박수로 영웅을 위로하고 경의를 표했다.
▲ 1939년 6월 19일 38번째 생일날 불치의 병 통보받아
루 게릭은 1939년 6월 13일부터 미네소타 주 로체스터에 있는 메이요 클리닉에서 6일간 정밀 검사를 받았다.
1939년 6월 19일에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라는 생소하기 이를데 없는 진단을 받았다.
하필이면 그 날이 루 게릭의 서른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의사는 급격한 전신 마비의 증상이 늘어날 것이고 음식을 삼키거나 대화하는데 지장이 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1939년 7월 4일 은퇴식, 그리고 영구결번
양키스에 더이상 팀을 위해 뛸 수없다는 뜻을 밝히자 양키스는 1939년 6월 21일 루 게릭의 은퇴를 공식 발표하고, 7월 4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루 게릭 은퇴식'을 열었다.
그날은 워싱턴 세네터스와의 경기가 있는 미국 독립 기념일로 무려 6만1808명의 팬들이 영웅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양키 스타디움을 찾앗다.
그날 뉴욕 양키스는 루 게릭의 유니폼 등번호인 4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다.
이 것이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이다.
▲ 만인을 울린 은퇴연설 " 나는 행운아"
1927년 시즌 멤버가 모두 초청된 은퇴식에서 루 게릭은 역사에 남을 명 연설을 했다.
루 게릭은 "오늘,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Today, I consider myself the luckiest man on the face of the earth)"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17년간 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동료들과 팬들,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덕택이었다며 겸손해 했다.
루 게릭은 "마지막으로 저는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고 있지만,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말씀드리면서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연설을 마쳤다.
▲ 명예의 전당 특별헌액, 베이브 루스와 역사상 최고의 3,4번 형성
1939년 시즌이 끝나자 전미야구기자협회는 루 게릭을 5년의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유예기간 없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이는 1972년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로베르토 클레멘테 정도가 있을 뿐이며 루 게릭은 지금까지 명예의 전당 최연소 헌액 기록을 갖고 있다.
루 게릭은 3번 베이브 루스와 함께 공포의 중심타선을 형성했다.
이들 두사람이 때려낸 홈런은 무려 1207개나 된다.
▲ 이름 자체가 근위축성측상경화증(ALS) 병명이 돼
루 게릭을 앓았던 근위축성측상경화증(ALS)은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병이다.
이름도 어려운데다 루 게릭 투병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이후 의사들조차 '루 게릭병'으로 불렀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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