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법 집행’ 여론 앞세워 공권력 행사 경찰이 9일 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영장 집행을 시도한 것은 더 이상 결단을 미룰 수 없다는 경찰 내부의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승 총무원장이 막판 중재에 나서면서 한 위원장 체포를 하루 뒤로 연기하긴 했지만, 정당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여론을 확인한 것은 적지 않은 수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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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의 한상균 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9일 서울 조계사 관음전에서 창문 사이로 밖을 살펴보고 있다. 이제원 기자 |
경찰은 한 위원장이 조계사로 도피한 지난달 16일부터 줄곧 종교시설 특수성을 감안해 강제 진입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경찰의 방침은 한 위원장이 거취 결단을 내리기로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약조한 날인 6일을 넘기면서 급변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위원장의 거취문제와 관련해 다각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다음날 긴급 간담회에서는 ‘8일 오후 4시’로 구체적인 자진출두 시한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직접 조계사를 방문해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회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조계종 측이 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한 위원장이 밝힌 거취 결정 시한을 끝까지 기다렸고, 조계종에 공식적인 접촉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검거 작전에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의 고위 관계자는 “강제 진입을 하기 전에 경찰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시도한다는 차원에서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나가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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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경찰의 영장 집행 방침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조계사 신도회 등이 두 차례에 걸쳐 한 위원장의 강제 퇴거를 시도하는 등 한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된 것도 경찰에 힘을 실어줬다. 법원을 통해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경찰이 정당한 법 집행을 계속 주저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 일각에서는 자칫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집회 때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69)씨의 건강이 악화될 경우 그간 쌓아온 영장 집행 명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강 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는 영장집행 연기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위원장 체포 작전이 거칠게 진행될 경우 불교계의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자승 총무원장의 중재를 수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체포영장 집행 연기가 공권력의 양보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한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불교나 조계종과의 관계가 아닌 법질서 수호와 공권력 확립 차원의 매우 엄정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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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검거를 위한 경찰의 공권력 투입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퇴거 찬성과 반대의 시민들이 언쟁을 하고 있다. 이제원기자 |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종교계의 눈치를 보느라 정당한 법 집행을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계종이 정당한 법 집행과 공권력의 원칙보다 위에 있을 수 없는 만큼 더 이상 검거작전을 미루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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