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행려자들이 머물다가는 이 사원에 들어 한 달포 머물러도 좋으리 남루를 끌고 온 오랜 노독을 풀고 고단한 일상의 구두를 벗어도 좋으리 바람의 거처에 가부좌를 틀고 사무치는 날이면 바람과 달빛이 다녀간 대웅전 기둥에 기대어 바람의 손가락이 남기고 간 지문을 읽듯 뼛속에 새겨진 비루한 생을 더듬어도 좋으리 주춧돌에 핀 연꽃 향기가 그리운 밤이면 사자포에서 기어온 어린 게에게 길을 묻고 새벽녘엔 흰 고무신 헐렁한 발자국들 따라 숲길에 들어 밤새 숲이 흘린 푸른 피를 마셔도 좋으리 눈발이라도 다녀간 날이면 동백숲 아래서 푸른 하늘 길로 한 생을 떠메고 가는 동박새의 붉은 울음소리를 들어도 좋으리 새들이 날아간 자리마다 제 그림자를 무릎 밑에 묶어놓고 참선에 든 나무들처럼 그대 나무 그늘에 펼쳐 놓은 바람의 경전을 눈 시리게 읽어도 좋으리 살아온 세월만큼 법어가 새겨진 그대의 몸은 어느새 바람의 사원이 되리니 바람의 사원에 들어 달마의 이마를 치는 낭랑한 목탁소리를 들어도 좋으리
-신작시집 ‘바람의 사원’(문학들)에서
◆ 김경윤 시인 약력
▲1957년 전남 해남 출생 ▲1987년 무크지 ‘민족현실과 문학운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신발의 행자’
▲1957년 전남 해남 출생 ▲1987년 무크지 ‘민족현실과 문학운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신발의 행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