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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허브’ 개념… 대립하는 학설과 이론의 ‘화해·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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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2-14 06:00:00 수정 : 2015-12-1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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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89〉 화쟁(和諍)사상 부처님이 서쪽에서 오신 까닭을 묻는다.

서남해 끄트머리 눈 시리도록 고운 바다, 법성포는 인도 아잔타 석굴서 본 듯한 탑들로 이국적이다. 불교가 백제로 들어온 것을 기리는 절 마라난타사(寺)다. 법성포(法聖浦)는 부처 가르침으로 성스러운 포구다. 영적인 빛이 강해서 그러리라. 영광(靈光)은 그 후로도 동학이나 원불교의 터전이었다. 기독교도 그 터에서 빛났다. 땅 이름은 많은 것을 담는다.

부처는 왜 그 신령스러운 땅을 향해 바다를 건너셨을까? “범죄자나 숨겨주려고 오신 것 아니다.”라고 자르지 말기 바란다. 상처 입은 여린 새 한 마리나 꼴사납고 처량한 홈리스도, 급기야 손가락질받는 파렴치 범죄자까지 부처님의 그 손바닥 안에 들면 내몰 수 없다. 

솟대는 고대종교의 성역(聖域)인 소도(蘇塗)와 관련 깊은 장대다. 장대 끝에 나무로 만든 새를 올린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리 사는 곳에 최후의 그 망명처마저 없다면, 이는 극락이 아니다. 우리 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각지 공통의 인류학적 본디다. 궁서설묘(窮鼠?猫), 궁한 쥐는 고양이를 문다. 한(恨) 풀어주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잡지를 냈던 앵보 한창기 선생의 통찰처럼 ‘억울함과 무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 잘사는 것의 출발점일 터다.

그 부처님 집에서 수갑 차고 내몰린 청년의 어두운 얼굴을 보았다. 그가 악마던가? ‘소도로서의 종교의 역할 또는 기능’ 요지의 기사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서너 군데 언론이 최근 조계사 사태를 궁리하면서 내놓은 주제다. 극락이야 이미 물 건넜다 치더라도, 그 제목들 보며 아직 절망은 이르다는 생각도 한다.

소도(蘇塗)는 먼 옛날 언제인가 솟대 세우고 담장 둘러, 그 안에 들면 누구라도 ‘안녕(安寧)’을 보장받았다는, 치외법권(治外法權)과도 같은 역사의 개념이다. 아이들이 만들기 좋아하는 솟대의 원래 뜻이었다. 한자는 원래 그 발음에 편의상, 또는 의미상 가깝다고 느껴지는 글자를 차용(借用)한 것으로 본다. ‘소’자 ‘도’자 한자의 뜻에 연연할 필요는 없으리라는 얘기다.

백제 불교 도래지 영광 법성포 마라난타사(寺)의 탑 광장. 인도 아잔타 석굴사원 등에서 볼 수 있는 고대 불교 상징들이 이국적이다.
재단법인 광주아시아인문재단
박하선 사진작가 제공
‘불교’와 정권의 행사자인 무력(武力) 사이에서 ‘화쟁위원회’라는 조직이 밀당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발언세력들 중 하나인 신도회(信徒會)는 부처님이 되고 싶은 불법(佛法)의 제자들 모임이다. 여러 수사(修辭)적 또는 정치적인 말씀들 있었으나?결과적으로?부처님의 집은 제자들과 함께 그 청년을 경찰에 내준 셈이다.

‘포악한 범죄자가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조계사가 평화를 되찾았다’는 요지의 설명을 단 사진이 크게 신문에 났다. 말하자면, 화쟁위원회가 그 ‘밀고 당기기’에서 밀린 것이다. 소도의 ‘깃발’이랄 수 있는 솟대가 부러진 것인가?

이번 사태의 여러 의논 중에 자주 나온 화쟁위원회의 ‘화쟁’이란 말은 한국 불교의 허브(hub) 개념 중 하나다. 영어 허브는 자전거 바퀴의 살이 모인 중심축, 비유적으로 중심되는 곳이나 뜻의 의미로 활용되는 말이다. 두산백과 ‘화쟁’의 풀이를 간추려 인용한다.

‘…… 신라의 원효가 주창해 한국 불교의 특징적인 사상으로 계승되었다. 화(和)는 화해 화합을, 쟁(諍)은 옳다고 주장하는 여러 말과 글을 뜻하며, 화쟁은 대립하는 다양한 학설과 이론의 화해와 화합을 이른다. 이는 일심(一心)과 더불어, 특정 종파와 경전에 얽매이지 않았던 원효사상의 회통(會通) 불교로서의 특징을 핵심적으로 나타낸다…….’

원효(元曉 617∼686)가 누구인가? 명문가 태생으로 요석공주과 결혼한 승려다. 우리 고대 문학과 언어사에 우뚝한 설총(薛聰)의 아버지다. 역시 큰 승려가 된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불법(佛法) 유학을 떠나다 해골바가지 물을 잠결에 맛나게 먹고 깨친 바 있어 돌아섰다.

일심(一心)은 화쟁과 함께 원효사상의 큰 바탕이다. 인간의 불성(佛性)은, 마음의 근원에 귀일(歸一)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하나 된 이 마음이 일심이다. 일심회, 뒷골목에서 좀 노는 그 어린 친구들 그룹 이름이 원래는 아니었구나. 

목판본 ‘십문화쟁론’ 서론. 화쟁사상의 출전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화쟁은 요즘 말버릇으로 풀자면 불교의 솔루션 중 하나로 볼 것이다. 원효가 편찬한 저술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의 핵심이다. 평화로운 설전(舌戰) 또는 언쟁(言爭)이란 얘기겠다. 명확한 말로 문제점이 충분히 제시돼야 좋은 여론도, 해결책도 나오지 않겠는가. 쟁(諍)은 말한다는 뜻(言)과 다툰다는 뜻(爭) 글자의 합체다. ‘침묵의 소리’ ‘달콤한 슬픔’과 같은 형용모순(形容矛盾·옥시모론)이나 선(禪)문답인가? 그러나 일과 물건을 이르는 말, 즉 사물(事物)의 바탕인 ‘이름’이 마구 헝클어져 혼돈 짙어가는 와중(渦中)의 현대에 제대로 들어맞을 지혜의 방법이 아닐까? 논리학 용어가 된 옥시모론(oxymoron)은 그리스어로 대충 ‘똑똑한 바보’란 뜻이다.

온누리가 손가락질을 하면 없는 죄도 생겨나는 세상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영화나 소설의 대형(大兄) 같은 존재가 손가락질하는 대로 사회 대다수는 마음을 향하고 뜻을 짓는다. 일렬(一列)로 정연하게 줄서서 국정화된 단일(單一)의 목소리에 무릎 꿇지 않으면 억울하고 무서운 ‘불안증’에 걸린다. ‘괘씸죄는 국가반역죄’라는 요즘 귓속말들은 상징적이다.

다른 여러 뜻 담은 함성(喊聲)이 그립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그 함성을 버렸다. 이런 ‘나머지 언어’들로 진리와 예술을 담아낼 수 있을까? 대형(大兄)이 하사하시는 언어만으로 일단 살아보자고? 왜, 무서우니까! 부처가 오신 뜻은 아직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화쟁의 필요성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사족(蛇足)

평화, 화(和)의 옛 문자, 여러 개의 피리와 이를 부는 입(口)이다. 피리 약(籥)자다. 피리의 소리는 화음(和音)이어야 할 것이다.?자를 의미요소로, 벼 화(禾)자를 발음요소로 합체한 것이 화(和)의 원래 글자다. 요즘도 처음 글자 화(龢)가 드물게 쓰인다. 좌우가 바뀐 모양새다. 

피리 약(籥)자가 생겨난 뜻을 설명하는 개념도(진태하 畵·왼쪽 그림)과 화(和)의 옛글자(이락의 著 한자정해).
‘피리(籥)’가 ‘입(口)’으로 모양이 변한 것이다. 和라는 글자 안에서는 피리라는 의미는 그대로이되 모양만 口로 간략화된 것이다. 간혹 한자 참고서 등에 어원 해설이라면서 ‘입에 먹을 것인 쌀이 들어가면 평화롭지 않느냐’는 임기응변(臨機應變)식 해석이 붙은 것을 보았다.

모르는 이들, 어설피 아는 이들이 긁어대는 ‘구라’는 쌓여서 지식의 독약이 될 수 있다. 중금속 중독처럼 씻어내기도 쉽지 않다. 여느 공부처럼, 한자도 첫걸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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