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식 전문가인 김현진(45·사진) 마지 대표가 국내 최초로 종교음식을 다룬 저서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난달)을 펴내고 음식을 통한 종교성의 회복, 더 나아가 평화운동에 나섰다.
“돈을 쉽게 벌다보니 어느날 아이들이 돈으로 보이면서 인간에 대한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학 졸업 후 13년 만에 인문학을 공부하게 됐어요.”
마지를 개인 기업이 아닌 법인으로 만든 것도 기업을 키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려는 의도였다. 마지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영단’ ‘약초’, 불교에서는 ‘붓다에게 올리는 공양’ 등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생명수’를 뜻하는데, 아프리카에서 ‘마지 운동(우물파기 운동)’을 경험한 기독교인들도 이 단어가 낯설지 않다.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다이어트 때문이었어요. 과거 80㎏이나 되는 몸무게를 감량하기 위해 달걀과 닭가슴살, 과일만 먹는 와중에 저혈압과 우울증, 불면증을 얻었고 그 원인이 닭에게 사용된 항생제라는 사실을 알았지요.”
그는 음식이 처한 아픈 현실에 눈을 떴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음식과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종교가 서로 상보적 관계임을 알았다. 특히 사찰음식은 이슬람교의 할랄(Halal)이나 유대교의 코셔(Kosher) 등 모든 종교 기준에 거스름이 없어 마음이 꽂혔다.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은 사찰음식은 짜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으며 사는 현대인에게 몸의 균형을 맞춰주는 건강식이기도 했다. 그는 모든 종교음식의 교집합을 풀(채소)로 보았으며, 그 이유를 생명 존중에 대한 고민의 흔적으로 이해했다. 김 대표는 단순히 종교음식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진짜 종교음식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 때문일까. 마지에 불자 손님이 많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자는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기독교 등 이웃 종교인들도 많다. 특히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채식전문 음식점 마지에서 열리고 있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전통음식 강좌. |
종교음식 전문가가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일찍이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자이나교 등 종교음식 전반에 대해 공부하는 푸드 스터디가 핫한 트렌드였다. 그는 이 분야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없어 외국 서적을 보고 많이 연구했다. 다행이 이번에 펴낸 책이 출판문화진흥원의 ‘2015 우수 출판 콘텐츠’로 선정돼 보람이 컸다.
“다문화·다종교 사회가 확산되고 있는데, 누군가는 이런 문화를 이해시키고 한식과 상생할 수 있도록 이론적인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지 않겠어요? 좋은 음식을 연구하고 만들어 한국 고유의 종교음식의 맛과 가치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씨앗이 되고 싶습니다.”
‘신들의 향연…’에는 음식문화로 살펴보는 종교와 역사, 철학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예수의 생애에는 유난히 먹거리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다. 나누고 함께 먹는 것이야말로 예수가 삶에서 보여준 윤리의 핵심이었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은 함께 나눠 먹기로 결심한 순간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붓다가 도를 깨친 것도 수자타가 공양한 우유죽이 계기가 됐고, 열반에 들게 한 것도 춘다가 공양한 ‘수카라맛다바라(돼지고기)’라는 음식이었다. 공자를 부끄럽게 만든 것도 음식이다.
책은 로마 최고 지배계층이 탐식의 문화를 포장해 ‘미식’으로 미화시켰으며,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먹방’ 신드롬은 시대정신을 상실한 현상이라고 질타하기도 한다. 책은 음식이 주는 교훈을 안다면 우리는 음식과 삶에 대한 오만에서 벗어나 좀 더 소박해질 수 있으며, 신들의 향연에 동참할 수 있다고 일깨운다.
글·사진=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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