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을 위해서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 무엇이든 거래하는 종합상사는 일본이 원조다. 서구권 무역회사는 특정 품목에 집중하는 게 보통이다. 잿더미가 된 일본 전후 경제 재건에는 여러 기업의 활약이 있었지만 종합상사 대활약이 빠질 수 없다. 영어사전에도 ‘종합상사’는 일본어 그대로인 ‘소고쇼샤(Sogo shosha)’가 등재됐을 정도다.
역사가 막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 종합상사는 5대 상사, 7대 상사 등으로 일컬어지나 그 정점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3강이다. 1800년대 일본 개항 이후 초기 무역을 독차지한 서구 상인을 몰아내고 종합상사의 기틀을 세운 게 이들이다. 초기부터 일본 특유의 족벌체제를 구축해 상품 생산과 수송, 금융서비스를 한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는 기법으로 훗날 우리나라 기업이 본받은 재벌 체제를 일궈냈다. 이후에도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3대 재벌 체제는 2차 대전과 오일 쇼크 등 숱한 위기를 넘기며 건재했는데 최근 일대 이변이 생겼다. 만년 4, 5위권이었던 이토추상사가 급상승해 내년에는 1위를 위협하는 2위에 올라서게 되는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이다. 각사 IR 자료 등에 따르면 올해 일본 종합상사 순이익 순위에서 부동의 1위는 4006억엔(3조8880여억원)을 기록한 미쓰비시이며 2위는 3065억엔(2조9750여억원)의 미쓰이가 차지했으나, 2012년 3위 진입에 성공한 이토추상사(3006억엔·2조9178여억원)와의 차이는 59억엔에 불과하다. 내년에는 이토추상사가 거의 1000억엔 차이로 2위 미쓰이를 추월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재계는 종합상사 한 길을 걸어 온 이토추상사가 전통의 미쓰이, 스미토모 재벌을 제치고 이처럼 최근 비약적인 성과를 거둔 비결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종합상사의 역사는 끝없는 생존경쟁의 일대기다. 메이지유신 등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출발해 눈부신 성과를 이뤘으나 2차 대전 후 전범기업으로 죗값을 치르게 돼 미쓰비시, 미쓰이 등은 해체되는 사태까지 겪었다. 하지만 이들은 1950년대 부활에 성공해 “북극에서도 냉장고를 판다” 식의 숱한 성공신화를 만들어내며 일본 수출 호황을 주도하고 막대한 국부를 쌓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후에도 7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제조업체와 판매업체를 연결하는 종합상사 본연의 수출대행업이 각 기업의 자체 해외영업망 활성화로 한계에 부딪혀 ‘상사 무용론’이 대두됐다. 이를 종합상사는 중개거래 중심의 무역 중개업에서 사업투자 모델의 종합투자회사로 전환해 새 영역 개척에 적극 나서면서 ‘만능 기업’으로서 변모해 고비를 넘는 데 성공했다.
◆돌풍의 주인공, 이토추 상사
굳건한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3강 체제를 깬 이토추상사는 상술에 밝았던 15세 소년 이토 주베에가 1858년 리넨, 기모노 상점을 연 것에서 시작됐다. 한때 판매 품목이 3만개에 달했다는 굴지의 종합상사로 순위에선 만년 3등 밖이었지만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 의류·음식 소매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특히 이토추상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선 한때 우리나라 기업인 필독서였던 일본소설 ‘불모지대’의 주인공 모델로 여겨지는 세지마 류조 전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빈농에서 태어나 일제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물이다. 일본군 초급 장교로 만주에서 활동했으나 소련군에 붙잡혀 시베리아에서 11년간 포로 생활을 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몸담은 이토추상사를 크게 키웠다. 회장까지 승진했으며 일본 기업의 정교한 정보분석 체계 모범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오일 쇼크 등을 미리 예측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며 같은 만주군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멘토’ 격이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도 자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일 외교사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막후 조정 역할을 한 인물이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등 대표적 일본 우익인사로 비판받는다.
강고한 3대 재벌 계열 상사의 벽을 뚫는 데 성공한 이토추상사를 두고 일본 재계에선 ‘하극상’이란 표현을 쓴다. ‘상사 돌풍의 핵, 이토추상사’ 보고서를 내놓은 포스코경영연구원 조항 수석연구원은 “결국 본업에 충실한 자세가 빛을 봤다”고 설명했다. 일본 종합상사가 1990년대 이후 자원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자원회사로 앞다퉈 변신했는데, 2011년 이후 자원 가격 하락으로 수익이 줄줄이 축소되는 지경이 되자 상대적으로 비자원 부문이 강한 이토추상사가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특히 올해 자원 거품이 붕괴되면서 5대 상사 모두 거액의 감손처리를 하고 이전 3위였던 스미토모는 결국 732억엔 적자로 전락하는 신세까지 됐다.
이토추상사 내부적으로는 2010년 취임한 오카후지 마사히로 사장의 ‘이번엔 3위, 다음엔 2위’ 식의 명확하고 달성가능한 목표 설정과 특유의 리더십이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오카후지 사장은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과 함께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아침형 근무 전환으로 유명하다. 잦은 회식 문화가 우리나라와 비슷했던지 “회식은 1차로 끝내고 10시까지는 귀가한다”는 ‘110 운동’을 전개하면서 업무도 오후 8시 이후 근무를 금지하고 오전 5∼9시 근무자에 대한 특근 수당 지급 등 조기출근을 유도했다.
사업 내용에선 본원 분야에 집중한 끈기가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본래 섬유가 주종목인 이토추상사는 다른 곳이 이를 사양산업으로 지목하고 축소할 때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계속 창출했다고 한다. 조 수석연구원은 “이토추상사는 원래 일본 관서지방에서 섬유업종 거래로 잔뼈가 굵은 상사”라며 “최근 자원가격 급락 사태를 맞아 종합상사 자원 투자에 잠재되었던 리스크가 현실화됐는데 이토추상사는 다른 곳이 경쟁적으로 비중을 축소한 트레이딩 부문에서 탄탄한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