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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10번의 주인공…신이라 불린 양준혁, 슬럼프서 만세타법 나와

입력 : 2016-01-24 07:50:00 수정 : 2016-01-22 16: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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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10번의 주인공…⑤신이라 불렸던 양준혁

양준혁(1969년 7월 10일생)은 '만세 타법'과 '양신(梁神)'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안타(2318개)의 주인공이다.

▲독특한 만세타법은 슬럼프에서 깨달은 그만의 회춘법

양준혁 하면 우선 '만세타법'이 떠 오른다.

볼을 때린 뒤 마치 만세를 부르듯이 두손을 어깨 위로 높이 쭉 뻗는다. 영락없이 만세자세이다.

선수 개개인의 타격자세에 관대한 메이저리그에서도 만세타법은 볼 수 없다. 양준혁만의 전매특허이다.

1979년 대구남도초등학교 4학년때인 1979년 처음 야구에 발을 들인 뒤 2002년까지 만세타법이 아닌 우리가 흔히 보는 타격품을 갖고 있었다. 덩치가 커다보니 조금은 건들거리고 스윙아크가 클 뿐이었다.

이런 양준혁이 만세타법을 들고 나온 것은 지독하게 앓았던 슬럼프 때문이었다.

199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양준혁은 고향팀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었으나 1999년 당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듬해 LG로 다시 트레이드 된 양준혁은 3년만이 2002년에서야 고향팀으로 돌아 왔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9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 '방방이를 거꾸로 들고 때려도 3할'이라던 양준혁은 삼성으로 돌아온 2002시즌 2할7푼6리라는 형편없는(?) 기록을 남겼다.

훗날 양준혁은 "당시 만 33세로 체력적으로 내리막임을 알리는 신호인가 등 숱한 고민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어 "어느날 훔런을 친 뒤 두팔을 높이 쳐든 내 사진을 보게 됐다. 내가 저런 자세를 취했나"며 파고들기 시작 "만세타법을 만들었다"고 했다.

2003시즌 만세타법을 들고 나온 양준혁은 3할대 타율을 회복(0.329)했을 뿐 아니라 33개의 홈런으로 자신의 단일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세웠다.

만세타법은 볼을 친 뒤 곧장 방망이를 놓는 것이 아니다. 방망이를 쳐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장 잘 맞았을 때 아무런 저항없이 기분좋게 방망이가 쭉 돌아나가며 폴로스루가 끝날 무렵 손에서 살짝 떨어진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응용한 것이 만세타법으로 결과적으로 스윙아크를 타원형으로 크게 만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힘이 실리게 됐다.

▲팬들이 "믿는다'해서 붙여진 양신(梁神)

양준혁은 양신으로도 유명하다. 워낙 믿고 보는 타자라는 뜻에서 한두번 불려지게 됐으며 팬클럽이 명칭처럼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양준혁은 1993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18시즌 동안 14차례 3할타율, 타격1위 4번, 타점 1위 1범을 차지했다.

통산 타율 0.316으로 역대 3위, 통산 안타 2318개로 역대 1위, 통산 타점 1389점으로 역대1위, 통산 볼넷 1278개로 역대1위, 통산 사사구 1380개로 역대 1위 등이 왜 양신임을 말해 준다.

▲최고의 순간은 2002년 팀 우승, 가장 값진 기록은 사사구와 볼넷

양준혁은 가장 기뻤던 순간을 주저없이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다"고 밝혔다.

2002년은 3년간의 타향살이를 접고 고향팀으로 돌아온 해이지만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정규시즌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제몫을 해내 어느정도 마음의 짐을 벗었다.

여기에 초등학교시절부터 2001년까지 팀 소속으로 단 한차례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뼈저린 한을 풀었다는 점까지 겹쳐 "2002년 우승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느 강연에서 양준혁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기록을 "통산 최다 볼넷과 사사구 기록이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늘 팀을 위해 묵묵히 일했던 나의 기록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팀을 위해 유혹을 뿌리치고 참고 1루로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프로야구 9번째이자 삼성 두번째 영구결번

양준혁은 2010시즌 올스타전을 마친 뒤 은퇴결심을 밝혔다.

이에 삼성은  9월 19일 SK 와이번스전을 '양준혁 은퇴경기'로 삼고 많은 준비를 했다.

은퇴 경기 시구는 양준혁의 아버지가 했고, 양준혁은 시타를 했다.

또 1회부터 4회까진 1루수, 5회부터 8회까진 우익수, 9회에는 좌익수로 경기에 나왔다.

더불어 그가 달았던 10번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9번째이자 삼성 라이온즈 구단 두번째로 영구 결번됐다. 삼성의 첫 영구결번은 2004년 이만수의 22번이다.

양준혁은 10번 영구결번에 대해 "존경하는 장효조 선배가 달았던 10번으로 함께 영구결번하는 의미로 감사히 받아 들인다"고 했다.

▲ 삼성 입단을 위해 대학도 고향에서 은퇴도 고향에서

양준혁은 야구를 시작하던 순간부터 삼성 라이언즈에 입단해 이름을 날리겠다는 꿈을 가졌다. 다른 팀은 그때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삼성에 가기 위해 대구상고 4번으로 서울 유수의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영남대를 택했다. 삼성에 가기 위해 군입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기량으로 볼 때 2010년 이후에도 다른팀에서 얼마간 충분히 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삼성에서 옷을 벗길 원했다.

그의 마음은 은퇴사에 잘 담겨 있다.

"2010년 9월 19일 바로 오늘까지 저 야구 선수 양준혁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야구를 참 좋아합니다. 많은 분들이 더 뛰어야 하지 않냐고, 또 더 뛰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이곳 대구, 라이온즈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행복했고, 이제 오늘 고향품에서 떠날 수 있게 돼서 더더욱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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