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로 저지음/티핑포인트/1만5000원 |
국내 주요 은행장을 두 곳이나 지낸 윤용로씨의 자서전 성격의 책이다. 흔치 않은 경력의 지도층 인사가 용기를 내 책을 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저자는 스스로의 경험과 지식을 사회와 후세들에게 환원했다.
2007년 말부터 기업은행장으로 3년간 일했고, 2012년엔 외환은행장을 지냈다. 남들이 보기엔 화려한 경력으로 보이지만, 남모르는 매 순간의 고심들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은행장 재임 이전에는 재경부(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위원회에서 30여년을 봉직했다. 그가 써내려간 글에서 정부 기관과 국내 은행 간의 문화적 차이도 드러나 흥미롭다.
책에 따르면 정부조직에서는 장·차관이 지시해도 “그건 어렵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무관이 국장, 과장과 토론을 벌이는 경우도 흔했다.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주장하는 문화였다. 그러나 은행은 그렇지가 않았다. 정부와 여타 기업의 문화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비서실장과 재무장관을 역임한 도널드 리건의 에피소드이다. 리건이 글로벌 투자은행인 메릴린치 회장으로 있었을 때였다. 간부들을 모아놓고 “뛰어보세요(Jump)” 하면, “얼마큼요(How high?)”라고 했단다. 재무장관이 되어 정부에 들어와서 간부들에게 “뛰어보세요” 했더니 “무슨 말씀입니까(What are you talking about?)”라는 답이 돌아왔단다. 상사의 지시에 대해 민간부문과 정부 관료가 보이는 다른 반응을 재미있게 표현한 일화이다.
저자는 은행 내부의 문화에 대해 격려 섞인 비판론을 펼쳐보였다. “은행 내부에서 섣불리 자산을 늘리다가 나중에 부실화되면 그 책임을 다 지게 된다며 걱정하는 임직원도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기업 대출을 늘리면 부실자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다른 은행들이 (기업 대출에) 거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유망하지만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을 엄선해서 대출하면 부실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며 믿음을 불어넣었다. 나의 이런 판단은 사후에 입증됐다. 즉 기업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 시(2008년 10월~2010년 말) 은행산업 전체 중소기업대출 순증의 90%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부실이 크게 늘지 않았다.”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은 서평을 통해 “기록문화가 아쉬운 우리나라에서 30여년 정부에 몸담고 있다가 두 곳의 은행장을 역임한 저자가 은행 재직 시의 경험을 책으로 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낸다”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는 적극적으로 중소기업을 도와 우리나라 산업기반의 훼손을 방지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 회장도 추천사에서 “조직의 수장이라는 무거운 자리에서 실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담담히 기록했다”고 평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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