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강진에 속수무책 당해/
주택·도로 폭격 맞은듯 초토화/
주민들 여진 공포에 노숙 버텨/ 잇따른 강진에 강타 당한 일본 구마모토(熊本)현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오래된 가옥들은 폭삭 주저앉았고, 도로는 여기저기 갈라지고 다리는 무너졌다. 내진설계로 지어진 건물들조차 한쪽 벽이 무너져내리는 등 대부분 훼손됐다. 시가 지정한 피난소에는 졸지에 집을 잃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주민들은 인근 관공서나 넓은 공원,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지진이 잦아들기만을 기원했다.
17일 기자가 찾은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동부 마시키마치(益城町)는 격렬한 시가전이 끝난 전장 같았다. 14일과 16일 두 차례 강진으로 인근 철도와 버스, 전차 등 대중교통 운행은 전면 중단됐다. 구마모토현 일대에서 14일 밤 강진으로 최소 9명이 숨졌다. 16일까지 이어진 연쇄 지진으로 최소 41명이 숨지고, 2100여명이 다쳤다. 이번 연쇄 지진으로 약 24만명에게 피난 지시가 내려졌고, 구마모토현에서만 16만5500명이 피난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가재도구 챙겨 긴급 피난 17일 일본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 주민들이 잇따른 강진으로 파괴된 주택에서 가재도구를 챙겨 피난소로 향하고 있다. 14일과 16일 구마모토현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 지진으로 최소 41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다쳤다. 마시키=AFP연합뉴스 |
구마모토현 피난소에서 만난 노자키(51)씨는 “첫 번째 강진이 있었을 때 본진이라고 기상청이 발표했으니까 안심했다가 더 큰 지진이 와서 깜짝 놀랐다”며 “앞으로 더 큰 지진이 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당분간은 공원에서 밤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1차 지진 때 마시키마치의 피난소로 지정된 마을회관(공민관)은 2차 강진 피해자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생사를 넘나드는 급박한 순간을 넘긴 주민들은 공간이 부족해 마을회관 앞 주차장 아스팔트 바닥에서 담요를 덮은 채 한뎃잠을 청해야 했다.
구마모토현 청사에 모인 주민들은 바닥에 종이박스와 매트리스를 깔고 노숙에 대비했다. 이재민들이 모인 현청 별관 10층에는 재해대책본부 상황실과 기자실이 마련됐다.
정식 피난소나 관공서 대신 노숙을 택하거나 승용차를 주택 삼은 이재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구마모토시내 한 공원에는 이날 오전까지 30여대였던 피난 차량이 저녁 무렵 200여대로 늘어났다.
구마모토현은 3교대로 24시간 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끼니도 거르며 피해자들을 돌보는 마시키마치 직원 우치무라(48)씨는 “각자 자기 맡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구마모토현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다나카 쇼지씨는 1차 지진 직후 오이타(大分)현에서 출발해 밤새 차를 몰고 현장을 찾았다. 일본 열도가 구마모토현 주민들을 향해 온정의 손을 뻗치고 있다.
정재영 기자, 구마모토=우상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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