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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세이] 자유로운 거주이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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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3 23:21:23 수정 : 2017-02-03 15: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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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손 담그고 싶다. 햇살조차 투명해 보이는 맑은 가을하늘이다. 간간이 뿌려진 흰 깃털구름은 파란 하늘을 더욱 깊고 높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을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했다.

북쪽 유럽의 가을은 스산하다. 이때쯤 영국 버밍엄 A38 도로변에는 색 마른 커다란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나뒹굴기 시작한다. 사람 보이지 않는 이끼 낀 담벼락을 지나칠 때 바람마저 불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날은 금세 어둑해졌다. 예쁘게 다듬어진 캠핑장 잔디밭에서 맘껏 즐길 수 있는 봄과 초여름의 화창함이 몹시 그리워지는 때가 북유럽의 가을이었다.

가을에는 가을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 계절에 따라 그 계절을 담뿍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그곳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골이든, 예술과 문화 그리고 역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어느 도시든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카잔차키스는 참다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지중해와 유럽을 넘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가 생전에 미리 써놓은 묘비명에서 그가 얼마나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시간과 경제적 여유만 주어진다면 계절에 따라 거주(居住)를 이전(移轉)해 살아볼 수 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사람은 한 곳에만 머물고 살기도 쉽지 않다. 새로운 교육과 취업을 위해 국내의 도시 또는 국제적으로 사는 곳을 옮겨 다닌다. 유목민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초지(草地)를 찾아 이동하며 산다. 나 또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좀 더 큰 도시, 그리고 서울로 옮겨야 했으며 또한 취업도 하게 되었다. 이후 직장에 따라 춘천 등 몇몇 지방도시에 살게 된 적이 있고, 교육연수로 외국에서도 지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691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이들은 교육과 취업에서 느슨해지고 여유로울 수 있다. 유엔 미래보고서는 앞으로 2030년까지 20억개의 일자리가 소멸하고 현존하는 일자리의 80%가 사라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만큼 시간의 여유를 가지게 될 인구는 점점 늘어날 것 같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서울의 물가는 전 세계 133개 도시 중 8번째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서울에서 사는 경제적 부담으로 세계 다른 도시에서도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자유로운 거주이전을 위한 여건은 과거와 달리 많이 좋아졌다. 우리나라 사람이 비자 없이 90일까지 체류가 가능한 국가가 85개국이 넘는다. 별도의 까다로운 절차 없이 이들 나라에서 한 계절 동안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또 네트워크의 발달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 어느 곳 어디에서 살든 서로 즉시 연락이 가능한 세상으로 만들고 있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2020년까지 전 세계 70억 인구의 절반이 넘는 40억명이 인터넷 환경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계절별 거주할 상품을 팔면서 24시간 연락체계를 갖추고, 세금이나 경조사비를 대납해 주거나 현지의 경찰이나 병원과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비상시 지원해 주는 서비스를 비즈니스로 하는 새로운 기업의 출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가상국가(Virtual Nation)가 탄생할까?

세상 시끄러운데도 이렇게 가을은 왔다. 이번 가을엔 예쁜 단풍에 한껏 취해 보련다.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찾아올 것이다. 어느 훗날 눈 녹은 물이 흐르는 태백계곡의 산기슭 너와집에서, 아내와 지난겨울 파리에 머물면서 흠뻑 적신 예술의 추억을 되새기며 봄 햇살에 발긋하게 피어오르는 복숭아꽃을 느긋이 바라보리라.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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