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찾는 외국인 중국·일본 관광객 뿐… 동아시아에 고립된 ‘한식’
한식에 대한 인식은 분명 한식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2008년 초반에 비해서는 높아졌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해외 14개 국가, 6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기 있는 한국 문화콘텐츠’ 항목에서 ‘한식’이 절반에 가까운 46%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불고기’나 ‘파전’ 등 일품요리에 머물렀던 한식의 개념이 ‘치킨’, ‘죽’, ‘빵’ 등 다양한 영역으로 넓어진 것 역시 한식 세계화의 성과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한식은 ‘고립’상태다.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에서 ‘진짜’ 한식을 접한 외국인 관광객의 국적이 한정적이라는 점이 꼽힌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2012년 이후 4년 연속 1000만명을 돌파했다.
2015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국가순위를 살펴보면 중국이 598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일본과 미국이 각각 184만명과 77만명을 기록했다. 홍콩(52만명), 대만(52만명), 필리핀(40만명), 태국(37만명)이 뒤를 이었다. 미국을 제외하면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대부분은 아시아 지역에 국한됐던 셈이다.
또 여행사들이 쇼핑 등 단기간 수익을 낼 수 있는 저가상품을 위주로 운영하다 보니 양질의 음식 제공에는 소홀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4 관광불편신고 종합분석서에 따르면 연간 총 1060건의 불편신고 건수 중 대부분이 음식점과 숙박, 교통 등에 대한 불편 건수가 763건으로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한식 세계화가 국내 한식당이 아닌 대기업의 유통망 확장에 의존했다는 점도 한계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이미 러시아 등에서 ‘국민 간식’이 됐을 정도로 탄탄하게 자리 잡았고, SPC그룹의 ‘파리바게트’, CJ푸드빌의 ‘뚜레쥬르’ 등 국내 베이커리 업체도 ‘크림빵’, ‘꽈배기도넛’, ‘단팥빵’ 등 한국인이 선호하는 빵을 ‘역수출’하고 있다. 2015년 1∼11월까지 베이커리제품의 대중국 수출액은 4303만달러로 2014년 같은 기간보다 22.2% 증가했다.
국내 호텔 한식당의 한 관계자는 “외국 시장에서 ‘한국의 맛’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간식, 디저트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진짜’ 한식을 보여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까지 한식을 세계 5대음식으로 육성하겠다.” 2008년 10월 농림축산식품부는 한식 세계화를 선포하면서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K팝이나 한국 드라마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과는 달리 ‘한식 한류’의 자체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는 꼽기 힘들다. 그나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나 ‘태양의 후예’의 인기에 편승해 드라마 장면에 등장한 ‘치맥(치킨+맥주)’이나 ‘태양의 후예’에 나온 삼계탕 등에 호기심을 갖는 외국인들이 많아진 것이 가시적인 성과다. 그러나 아직 한식 세계화가 ‘불고기’, ‘잡채’, ‘떡볶이’ 등 특정 음식에 집착해 전체적인 식문화를 알리는 데 오히려 소홀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한식재단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 개막을 앞두고 ‘세계인이 좋아하는 한식메뉴 10선’을 발표했지만 ‘모던불고기’, ‘단군신화전’, ‘롤삼계탕’ 등 이름은 거창하지만, 관광객이 일반 한식당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인의 한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캐주얼한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선호는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계 미국인 로이최의 푸드트럭 ‘고기(Kogi)’다. 20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푸드트럭을 열고 멕시코 음식 타코에 김치, 불고기 등을 넣은 요리를 선보여 인기를 얻었다. 그의 뒤를 이어 ‘양푼 도시락’, ‘컵밥’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패스트 한식’이 외국인들의 입맛을 끌고 있다. 이 같은 음식은 ‘만들어 먹기 힘들다’는 한식에 대한 선입견을 거두고, 비교적 구하기 쉬운 재료로 익숙한 맛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거부감 없이 한식을 받아들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에 내년 국내 최초로 발간될 예정인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은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식’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최고의 식당에 오를 최종 라인업은 11월 첫주에 발표될 예정이다. 미쉐린 가이드가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관심과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 선정된 한식당 외에도 한식을 다루는 국내 식당들이 함께 주목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한 여행사 관계자는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단체관광보다는 개별적인 관광을 즐기려는 추세”라며 “‘미식’에 관심을 갖는 여행자들이 미쉐린 가이드를 참고해 새로운 관광지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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