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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과 구 서울시의회 사이에 있던 국세청 남대문별관이 철거된 지 1년 반이 흘렀다. 남산을 가로막고 있던 외인아파트와 경복궁을 짓누르고 있던 옛 중앙청을 철거했을 때처럼 가슴이 후련했다. 가려져 있던 아름다운 성공회성당 건물과 나로서는 25년 전 결혼식 추억으로도 남아있는 세실극장이 그 모습을 바깥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철거가 가능했을까? 국가 소유인 남대문별관과 서울시 소유의 청와대사랑채를 맞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공공이 소유하는 건물이 있는 지역은 그래도 다행이다.

1970년대 초였다. 시골 도시의 중학생이던 나는 몇 살 위인 형과 함께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밤새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녘이었다. 지하철이 없던 시절이라 시내버스를 타고 내린 곳이 덕수궁 대한문 근처였다.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으로 해장국을 시켜먹었다. 메마른 입안을 따끈한 국물이 부드럽게 감쌌던 기억까지 남아있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그 시간에 갈 곳이 따로 없어서였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해장국집 입구에 있는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얼마간 시간을 보냈었다. 앞은 아침안개로 흐릿했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도로 건너에는 덕수궁의 높은 돌담이 가로막고 있었다. 돌담을 아래로 남녀학생들이 조잘거리며 줄이어 어디론가 등교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단정한 교복과 신고 있는 구두가 유난히 내 눈에 띄었다. 운동화를 신고 있던 나는 괜히 발끝을 오그렸다. 그 후 한동안 서울의 하늘은 언제나 안개가 해를 가리고 있는 줄만 알았고, 서울학생들은 모두가 멋있고 부유한 줄만 알았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몇 해 전, 나는 정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사계절 동안 한층 깔끔하게 다듬어진 덕수궁돌담길을 걸으며 출근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 그때 그 해장국집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희미하게 기억되는 비슷한 위치에 있는 한 건물이 신기하게도 입구에 몇 단의 계단을 가지고 있었다. 계단은 한쪽 구석으로 걸터앉을 만했고, 길 건너에 돌담과 대한문이 바라보이는 위치였다. 낡은 작은 건물과 바로 붙어있는 5층 높이의 그 건물은 리모델링한 듯했지만 무언가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 채 불편하고 어설퍼 보였다. 아침이면 여전히 예쁘고 단정한 모습의 학생들이 돌담을 끼고 등굣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도시화율이 90%를 넘어선 지도 수년이 지났다. 이제는 어설픈 대로 빽빽이 채워진 채 곳곳이 노후화되고 있는 도시를 새롭게 다듬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얀 도화지와 같은 신도시개발과 달리 꽉 차 있는 기존도시의 재탄생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연면적의 비율, 즉 용적률을 서로 교환하면서 도시를 재정비하는 방법이 그중 좋은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해 입법화된 결합건축제도와는 거리가 있다. 계획주체나 대상지역, 두 대지 간 거리도 100m 이내로 제한 등 도시 전체를 다듬어 가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어떤 지역이라도 용적률을 서로 교환하는 개념으로 공공이 계획을 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공원화나 구릉지 등 저밀도로 유도할 필요가 있는 지역은 용적률을 줄이는 대신 그 용적률을 역세권 등으로 이동하여 재정비함으로써 도시의 공간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도시의 교통 혼잡과 비용도 줄이게 될 것이다. 빈집 정리나 공장지대의 이전 그리고 필요에 따라 토지의 용도까지도 교환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는 세월과 함께 끊임없이 새롭게 재탄생되어 나갈 것이다. 그 어느 날 역사의 숨결이 차곡하게 쌓인 덕수궁돌담길의 그때 그 해장국집이 있던 건물도 아름다운 새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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