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가 표절논란에 한번 휩싸이게 되면 진정성을 회복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 후유증이 워낙 크기 때문에 새로운 곡을 만들 때는 머릿속에 잠재돼 있는 남의 노래 멜로디를 싹 다 지워버리고 작업에 임한다. 표절 근처에 가지도 않는 게 기본이다.
가수 전인권이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곡으로 요즘 표절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26일 한 커뮤니티에는 ‘걱정말아요 그대’가 1970년대 독일 퀼른에서 활동한 그룹 블랙 푀스의 ‘드링크 도흐 아이네 멧(한 번 마셔 봐)’과 비슷하다는 글과 함께 공연 영상이 뜨면서 전인권은 곧바로 표절논란에 휘말렸다.
논란의 핵심은 ‘걱정말아요 그대’ 후렴구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부분의 멜로디가 독일 노래와 똑같다는 점이다. 독일공연 동영상을 보니 머리가 희끗희끗한 관객부터 청년 등 남녀노소가 일제히 후렴구를 따라 불러 독일국민 애창곡처럼 보였다. 네티즌들은 이 노래가 ‘걱정말아요 그대’와 비슷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날 전인권은 CBS 표준FM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난 표절한 적이 없고 비슷하다고 해도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근데 비슷하긴 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이혼하고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있다가 가사를 썼다고 전했다. 40년 음악인생을 걸고 표절하지 않았다고 강력 부인했다.
또 한편으로는 이상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판 노래를 듣지 독일 노래는 들은 적이 없다. 마운틴이란 밴드가 우드스탁을 헌정하면서 만든 노래가 있는데 ‘걱정말아요 그대’곡을 쓴 다음 비슷했다. 녹음할 당시 편곡자에게 ‘비슷하지 않나? 괜찮을까’라고 했더니 ‘뭐가 비슷해요’라고 하더라”며 작업할 당시를 떠올렸다. 곡을 만들 때 찝집함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어쨌든 전인권은 표절논란이 계속 일자 “아니다”고 일관하다가 이틀 만에 입장을 바꿨다. 그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글을 통해 “표절논란을 해결하고자 곧 독일로 간다”면서 “일단 그 곡을 만든 사람 입장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원하는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원곡자를 만나 로열티를 달라고 하면 적당 선에서 합리적으로 재판을 하든, 그쪽 입장대로 로열티가 결정되면 한국저작권협회와 상의해 주겠다”고 급 후퇴했다.
“표절하지 않았다. 비슷하다고 해도 우연”이라고 펄쩍 뛰며 대응하던 그가 마치 표절을 인정한 것처럼 갑자기 태도를 바꿔 독일행을 택한 이유는 뭘까. 전인권은 독일가는 것도 표절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표절시비에서 작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사는 쉽게 표절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멜로디다. 그대로 베끼면 표절 부분을 증명하기 쉬운데 ‘비슷하다’‘똑같은 것 같다’라고 하면 그때부터 애매모호해 진다. 양측 주장이 맞서면 그 누구도 베낀 부분을 확실하게 잡아내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그 범위와 정의는 어떻게 되나. 노래를 들었을 때 누구나 ‘비슷하다’ ‘똑같다’ 느껴지면 그건 표절곡이다. 창작성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같은 코드는 나올 수 있어도 그 안에 멜로디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전인권 측 주변사람들도 표절논란의 심각성을 충고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공연윤리위원회가 표절심의를 거쳐 두 소절(8마디) 이상 비슷한 표절을 가려왔으나 1999년 공연법 개정으로 그런 제도나 규정은 이미 없어졌다. 지금은 당사자 간 민사소송으로 사법기관에 의해 표절 여부를 해결하고 있다.
음악전문가들은 “외국곡을 표절했을 경우 원곡자가 국내 변호사를 통해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포기하는 경향이 많다”면서 “이런 이유로 외국곡을 많이 베끼는 것도 가요계의 현주소”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어 “지금은 전세계 음악을 동시에 듣는 시대다. 외국곡이라 하더라도 표절하게 되면 금세 탄로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걱정말아요 그대’는 전인권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2004년에 발표한 4집 앨범 타이틀곡이다. 가수 이적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OST 곡으로 다시 불러 재조명 받기 시작했고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국민적인 가요가 표절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추영준 선임기자 yjchoo@segye.com
동영상= 유튜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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