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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청년 희망도 노후 안정도 '신기루'… 삶의 무게에 짓눌린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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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6 19:35:29 수정 : 2017-06-08 19: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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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20대 여성 A씨. 25번에 걸쳐 이곳저곳 입사원서를 낸 끝에 졸업 6개월 뒤 간신히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주당 41시간을 일해 받는 월급은 204만2000원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에 취업한 친구보다 25만원 덜 번다.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지만 어차피 전공을 살린 대학 동기는 10명 중 2∼3명뿐이다. 차츰 결혼준비와 노후대비도 고민해야 할 터여서 ‘더 좋은 직장을 구해 소득을 올리는 것’이 최대 걱정거리다.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하든, 노후를 준비하든 할 것 아닌가.

#2 B씨는 2년 전 39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B씨의 부모는 30대 후반이 되도록 결혼할 생각이 없는 아들을 보며 속을 태웠지만 정작 B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바에야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친구 열 명 중 너댓 명 꼴로 미혼이었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 결혼해 아이도 낳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앞으로 10년 내 퇴사 압력에 시달릴 텐데 무슨 수로 ‘인생 2모작’을 할지 막막하다. 자신의 미래도 어두운데 아이 양육과 부모 부양까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3 C씨의 남편은 10년 전 52세의 나이로 명예퇴직했다. 그래도 50대에는 계약직이나마 일을 이어갈 수 있어 궁핍하단 느낌은 아니었지만, 60대가 되자 소득이 절반으로 줄었다. 엉겹결에 시작된 황혼육아와 아직 독립하지 못한 막내아들은 겉으로 내색은 못해도 삶의 짐이다. 수중의 노후자금은 1억9000만원뿐인데 아들 결혼비용을 대주면 5000만원이나 남을까. C씨는 “갈수록 비관적인 생각만 늘고, 이러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우울증에 걸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A, B, C씨의 사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사회의 사회·심리적 불안의 원인분석과 대응방안’, 고용노동부의 ‘2014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조사’,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등의 통계로 가정한 대한민국 20대, 40대, 60대의 평균적인 삶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고용불안이 전 연령대로 번지면서 누구도 ‘젊은 세대의 희망’과 ‘노후 세대의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뒷걸음치는 삶의 질… 아등바등 살아야 현상 유지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는 양적 성장이 국민의 행복을 그만큼 끌어올리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삶의 질 지수는 소득, 고용, 주거 등 56개 객관지표와 24개 주관지표의 값을 단순 평균한 값이다. 그 결과 2006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15년 111.8로 11.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1인당 실질 GDP 증가율은 28.6%로 훨씬 높았다. 삶의 질은 GDP 증가율보다 41.3% 오르는 데 그친 것이다. 특히 여러 지표 중 가족·공동체 영역 지수는 1.4% 감소했고, 고용·임금(3.2%), 주거(5.2%), 건강(7.2%)은 증가율이 10%를 밑돌았다. 그런데 낮은 증가율을 보인 고용·임금, 건강은 우리 국민의 대표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보사연의 한국사회의 사회·심리적 불안 원인과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남녀 7000명에게 물은 결과 20대는 ‘취업 및 소득’(49.9%), 40대는 ‘노후준비’(30.9%), 60대는 ‘신체적 건강’(36.3%)을 가장 큰 불안요소로 꼽았다.

‘88만원 세대’라 불렸던 20대의 경우 동명의 책이 나온 지 올해로 10년이 지났지만 ‘n포 세대’, ‘77만원 세대’ 등 더욱 암울한 수식어를 달고 있다. 가상의 A씨 사례처럼 우리나라 4년제 대졸자 고용률은 졸업 후 18개월 뒤에도 72.8% 수준이다. 취업자의 64.8%만이 정규직(수도권 기준. 여성 정규직은 59.1%)이다.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53.5%에 머물러 역대 가장 큰 수준으로 벌어졌다.

40대의 삶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40대 가구의 소득 증가율은 사상 처음으로 0%대를 기록했다. 자영업으로 내몰려 소득이 불안정해지고 양육비 등 쓸 돈은 늘어난 결과다. 통계청 사회동향에서도 30∼40대 10명 중 7명은 미래를 비관적으로 봤고, 자녀세대의 계층 상향이동 가능성도 절반이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한 민간연구소 조사에서는 40대가 노후불안감이 가장 높은 연령대로 나타났다.

노년기에 접어드는 60대는 소득절벽을 맞딱뜨린다. 60대 가구주의 연평균 소득은 3033만원으로, 50대(6101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존감, 사회적 지지(타인으로부터의 관심), 주변인과의 소통 같은 감정적인 요소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실업률 높은 북유럽… 행복지수 높은 이유

어두운 현실의 탈출구는 없을까. 이에 대한 해법은 국제 행복도 비교 조사에서 얻을 수 있다.

2017 유엔 세계행복보고서(WHR)에서 우리나라는 155개 국가 중 55위에 올랐다. 2013년 41위에서, 2015년 47위로 떨어진 데 이어 5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최상위권에는 북유럽 국가가 포진해 있다. 그런데 상위 5개국과 우리나라의 지표를 보면 경제성장률과 출생 시 예상 건강수명은 우리나라가 앞선다. 우리나라 전 연령대가 일자리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전체적인 실업률과 청년실업률도 우리나라가 1∼2% 포인트 낮다. 행복 순위 5위인 핀란드의 청년실업률은 19.9%로 우리나라(10.7%)의 두배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사회적 안정망과 국가에 대한 신뢰 덕분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기댈 만한 누군가가 있는가’란 물음에 상위 5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핀란드)은 0.95, 우리나라는 0.81의 응답 점수를 보였다.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의지할 만한 대상이 있다는 뜻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더 큰 차이가 난다. 1은 완전한 신뢰, 0은 완전한 불신을 뜻하는데 상위 5개국은 0.56, 우리나라는 그 절반도 안 되는 0.24를 기록했다. 소득·계층 간 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나 ‘인생사다리 점수’(주관적으로 느끼는 현재 삶의 수준)도 북유럽 국가가 훨씬 낫다.

북유럽 국가에서 경기 침체나 실업으로 인한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더 탄탄하다는 얘기다. 보사연의 이상영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행복도가 낮은 이유는 경제·산업기술 수준 같은 객관적 지표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음에도 사회모습이 국민 기대치에 못 미치기 때문”이라며 “복지나 상대적 빈곤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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