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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폭염 속 폐지줍는 노인 안전 '빨간불'

입력 : 2017-06-18 11:09:40 수정 : 2017-06-18 11: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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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생계·건강 삼중고 시달리는 폐지 줍는 노인

지난 14일 서울 양천구,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 한 노인이 폐지가 쌓인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있다.

“한여름엔 정말 죽을 맛이야, 땀이 비 오듯 흐른다니까”

지난 5일 손수레에 폐지를 한껏 싣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던 박모(71)씨는 그 자리에 서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30도에 달했다. 박씨는 “여름마다 폐지를 주울 때면 죽을 맛”이라며 “특히 장마 기간엔 폐지가 물에 젖어 무게가 두 배 이상으로 무거워져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조차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지내는 박씨는 중고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여름을 나고 있었다. 기자는 “쉬엄쉬엄 하시면 안되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요즘 폐지 줍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탓에 낮에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고 푸념했다. 이어 “고질적으로 허리가 좋지 않고 무릎도 시원치 않지만 살기 위해서는 푼돈이라도 벌어야지”라며 고개를 떨궜다.

고령층이 폭염 등에 취약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65세이상 온열질환자는 578명으로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여름철 평균기온 역시 평년(23.6℃)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 돼 폐지 줍는 노인들의 안전에 적신호가 켜졌다. 

전국 곳곳 폭염특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낮 12시에서 오후 5시 사이에는 외출을 자제해야한다"면서 "노인들이 폐지를 줍기 위해 아스팔트 걷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 폭염·생계·건강, '삼중고' 시달리는 폐지줍는 노인들

자원재활용연대는 폐지를 줍는 노인의 수가 약 175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도 도내 ‘폐지 줍는 노인’이 약 3840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제지연합회에서 발표한 지난해 폐지회수율이 84.6%에 달할 정도로 적지 않은 노인들은 폐지를 줍기 위해 더운 여름 거리로 나서고 있다.

서울 양천구 일대에서 폐지를 줍는 양모(87·여)씨는 주워온 선풍기 한 대로 올 여름을 보낼 예정이다. 다리가 안 좋아 한 달에 2~3번씩 병원에 가야하고 반찬이라도 사 먹으려면 폐지라도 틈틈이 주워야 한다는 게 양씨의 설명이다. 양씨는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자녀가 있어 기초수급자로 지정이 안됐다. 기초노령연금 20만원에 폐지를 주워 버는 3~4만의 목돈이 그녀 수입의 전부다.

양씨는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폐지를 줍는 상황이지만 자녀들은 1년에 한번 보일까 말까다. 양씨는 “자식들도 힘든 걸 알기에 차마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이날도 양씨는 무더위 속에서도 상점 앞, 교회, 분리수거함 주변을 돌며 폐지를 모았다. 수북하게 폐지가 쌓이면 손수레를 지그재그로 끌고 언덕아래 있는 고물상을 찾아갔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4개국 중 가장 높은 49.6%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이 많아지다 보니 돈 없이 장수하는 게 가장 힘들다는 ‘무돈장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적지 않은 노인들은 생활비라도 벌기위해 폐지 줍기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지난 14일 서울 양천구 인근 도로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의 모습.

◆폐지 싣고 도로를 걷는 노인들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협하는 건 더위만이 아니다.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도로로 나서는 노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손수레를 끌고 도로 위를 거침없이 종횡하는 모습은 당장 차와 접촉사고가 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아보였다. 길 한복판에서 손수레를 끌던 84세의 한 노인은 “인도에는 사람들이 많아 도로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양씨도 “도로에 폐지가 담긴 손수레를 나뒀다가 지나가던 차가 치어 손상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만약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로 65세 이상 노인들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자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1년 노인 사상자는 7만9249명에서 2015년에는 13만5497명으로 급증했다. 5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폐지가 담긴 손수레를 끌고 한 노인이 길을 걷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에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경기도 등은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한 안전 보호 대책을 마련했다. 폐지 줍는 노인에게 야광조끼와 리어카용 반사경, 안전 장갑 등을 보급하고 연간 2차례 폐지 줍는 노인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게 골자다. 이외에도 기초단체별로 폐지 줍는 노인들의 안전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대한노인회 임춘식 회장은 “노인들의 일자리 및 생계에 대한 제대로 된 점검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약값은커녕 생활비조차 없는 빈곤계층 노인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자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부양의무제 폐지와 같은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안승진·김지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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