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전 세계 25개국 한국전쟁 참전국을 돌며 생존 참전용사를 만나고 한국을 찾은 재미동포 한나 김씨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랭글 전 의원 퇴임과 함께 올해 1월 ‘백수’가 된 김씨는 10년 전 리멤버727을 시작하며 세운 목표 중 마지막, 전 세계 참전용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운명처럼 떠올렸고 실행에 옮겼다. 지난 23일 서울 한 카페에서 ‘참전국 일주’를 막 마치고 한국을 찾은 김씨를 만났다.
![](http://img.segye.com/content/image/2017/06/27/20170627516238.jpg)
“리멤버727 이후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의회 고위직에도 있었고요. 열정과 꿈만 있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집을 정리했고, 주변 후원도 일부 받았지만 사비를 털었다. 비행기표만 끊은 채 참전국 25개국을 도는 여정이 시작됐다. 참전국 진영은 가리지 않았다. 중국, 러시아, 심지어 북한도 갔다. 남미 콜롬비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단 1명의 참전용사가 생존해 있는 나라도 모두 갔다.
1월 러시아의 혹한도, 불편한 잠자리와 도시당 평균 1∼3일 체류하는 빠듯한 일정의 피로도 모두 견디게 한 것은 전 세계에서 만난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의 따뜻한 환대였다. 할아버지들은 김씨를 손녀처럼 반겼다. “홈 리스에 잡 리스(무직)인 상황이었는데도, 전 할아버지들을 만나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3월에 호주를 갔는데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1월부터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방문했던 캐나다 참전용사들이 전 세계 영연방 동료들에게 김씨 여정을 알렸던 것이다. 우연히 찾아간 보훈병원에서 거동이 불편해 그를 만나러 올 수 없었던 한 참전용사를 만났을 땐 이산가족 만난 것처럼 서로 반가워했다. 김씨는 참전용사 집에서 묵고,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며 손녀 노릇을 톡톡히 했다. 6살에 이민을 떠나 누구보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이별한 그는 “할아버지가 전 세계 할아버지들을 대신 내게 보내 주신 것”이라고 했다.
![]() |
지난 3월 호주에서 만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한나 김. 한나 김 제공 |
미국 국적인 그는 마지막 여정으로 주변 만류에도 북경을 거쳐 5월 말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최근 오토 웜비어 사건까지 터지자 주변에선 그에게 ‘위험한 일’을 했다며 질책하기도 했다.
“저도 너무 두려웠어요. 하지만 전 세계 참전국을 가면서 북한을 안 가면 이 숙제가 완성되지 않는 거예요. 저의 궁극적 목표는 그분(북한)들도 원하는 평화통일이니까.” 김씨는 나, 내 가족과 너무 닮은 북한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적과 싸운 게 아니다”라는 강한 확신을 느꼈다. “물론 감시도 받았고, 그들이 제게 보여준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닌 거 알아요. 하지만 제가 본 게 전부 거짓이 아닌 것도 알아요.” 북한에선 참전용사를 만나지 못한 대신 전쟁기념관과 판문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기도를 하다가 팔찌의 십자가 장식을 잃어버렸는데, “자유롭게 오가고 싶은 내 기도와 마음을 북한 땅에 절실하게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0년 전 세운 목표를 모두 이뤘으니 이제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한국전을 기억하도록 하는 일은 나의 사명이기 때문에 끝난다고 끝나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이건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제 삶 자체예요. 10년 전 목표는 세웠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무엇을 하겠다고 계획한 적은 없어요. 그저 이 일이 내 삶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따라온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언제나 ‘천사’들이 나타나서 도와줬어요.”
![](http://img.segye.com/content/image/2017/06/27/20170627516239.jpg)
그는 11년 전 생사를 가를 뻔한 교통사고에서 살아난 적이 있다. 그 기억은 그에게 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해 사는 법을 가르쳤고, 이는 그 후 10년간 이 일을 시작하고 이끌어오는 데 도움을 줬다. 정부공식행사 외에 시민이 주도하는 6·25 기념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출국 1주일을 앞두고 단 열 명만 와도 좋다는 마음으로 기념행사를 기획한 것도 그런 삶의 태도에서 비롯됐다.
스물넷에서 서른넷까지, 청춘을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일에 쏟은 김씨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잊혀진,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전쟁. 가장 큰 아픔이자 숙제. 저의 인생을 건 사명(life-long mission).”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