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50일 동안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의 길을 따라갔다. 청와대와 내각은 투쟁성이 강한 운동권과 시민단체 활동가들, 실전보다 이론에 강한 교수들로 가득찼다. 장관 인사가 야당 반대 장벽에 부딪히자 “국민의 뜻”이라며 밀어붙이고, “인사청문회는 참고 사항”이라며 야당의 협치요구를 물리쳤다. 문재인과 노무현은 동어반복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천성산 도롱뇽’ 때문에 수조원에 이르는 국민세금이 낭비된 적이 있다. 지율 스님과 일부 환경단체가 “도롱뇽을 살려라”면서 단식과 소송을 거듭해 천성산 터널을 뚫는 경부고속철도 공사가 6개월이나 중단됐다. 이때도 환경영향평가 부실이 이유였다. 그러나 공사가 끝난 뒤 “천성산엔 도롱뇽 천지였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환경단체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었다. 환경 근본주의의 부작용이 이리 크다. 현재의 여론과 미래의 진실은 다를 수 있다. 천성산 도롱뇽은 정치지도자에겐 값비싼 교훈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
여론은 비전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알래스카 사례가 웅변한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러시아가 1859년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지금 알래스카는 금광에다 석유로 복덩이다. 당시엔 척박한 땅에 불과해 미국 여론은 반대가 우세했다. 미 국무장관 윌리엄 시워드가 “눈 덮인 알래스카가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무한한 보물을 봐야 한다.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알래스카를 사자”고 설득했다. 상원에서 겨우 한 표 차이로 매입안이 통과돼 1867년 720만달러라는 헐값에 샀다. 시워드가 미래를 보지 않고 국민의 뜻에 맡겼다면 오늘의 알래스카는 미국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2년 반이 지난 뒤 “나는 내 중심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면서 나를 바꿨다”고 했다. 그나마 그런 인식의 바탕이 있었기에 여론 압박에도 “국가 없이 평화를 이룰 수 없다”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FTA는 이념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며 한·미 FTA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후보 시절 “사진 찍기 위해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첫 한·미 정상회담엔 이라크 파병 찬성 카드라는 선물을 들고 갔다. 문 대통령의 ‘선물’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재배치 논란이었다.
국민의 뜻이 뭔가. 거기에 미래의 가치가 몇 % 함유돼 있는지, 그저 자고 나면 바뀌는 세상의 인심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결국 정부의 책임이다. 당장 절박한 민심도 챙겨야 하고 그것을 위해 국민과의 직접 정치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론에 맡기기엔 미래가 변화무쌍하다.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까지 국민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세대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구소련을 무너뜨리고 미국을 절대강자로 올려놓았다. 세상을 많이 바꾼 것 같지만 회고록에서 “나는 겨우 세상을 오른쪽으로 5도 정도 바꾼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5년 단임제는 시간이 더 없다. 과거를 뒤집는 일이 아닌 미래로 가는 다리 놓기에 매달려도 시간이 부족하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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