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에서 영양사로 근무했던 김모(33·여)씨는 올해 초 계약종료 이틀 전에 동료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재계약 시점이 코 앞이었지만 회사는 가타부타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해 연말부터 만삭의 몸으로 연일 야근을 했다. 충성심을 보였던 터라 자신이 출산휴가 선례를 남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센터장의 정식 통보도 아닌 바로 옆자리 동료를 통해 해고 소식을 접하며 큰 상처를 받았다. 김씨는 “센터장까지 비정규직이다보니 사람이 수시로 바뀐다”며 “3년여 근무한 제가 가장 오래된 직원인데 임신 후 떠났던 많은 동료들처럼 버림받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영양사를 따로 두기 어려운 소규모 어린이집의 식단 일정을 짜주고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등 수년간 해당 지역의 어린이집들과 소통해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어린이 집단급식소의 위생 및 영양을 관리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전국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가 말단 직원부터 센터장까지 100% 비정규직으로 구성되는 등 고용 상황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식약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전국 215개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에서 정규직으로 고용된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전국 1515명 종사자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는 식약처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사업·운영을 위탁한 민간기관이지만, 올해 기준 369억원의 국고가 투입됐다. 서울은 30%, 그 외의 지방은 센터 예산의 50%를 국가 재정에서 지원한다.
위탁 기관별로 대학산학협력단에서 186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대한영양사협회에 13개, 지자체 직영법인에 15개 센터가 있다. 보육·교육 시설의 위생 및 영양관리를 하는 곳인 만큼 대부분 학교 안에 설치돼 있다.
식약처가 지자체에 사업을 위임하고 지자체가 다시 대학교 등에 운영을 위탁한 형태다. 지자체는 3년마다 센터를 평가하고 재위탁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다보니 식약처 산하 기관으로 불리기만 할 뿐 엄연한 민간 기관이라 현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Zero) 정책의 대상도 되기 어렵다.
사업의 최종 관리 주체인 식약처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간접적인 관리만 한다.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과 임금 등 근무 처우와 관련된 현황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열악한 고용 형태로 종사자들이 자주 바뀌면서 어린이들의 올바른 식생활 환경을 조성하고 건강관리를 위해 도입된 사업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소하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에 위탁했다 해도 식약처를 통해 국고를 연간 369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인데, 근로자에 대한 처우 파악조차 안 돼 있는 것은 문제”라며 “위탁 기관 변경과 관련해 현재 가이드라인에 명시한 ‘사업자에 대한 승계’ 원칙뿐만 아니라 ‘근로자에 대한 고용 승계’ 원칙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사업 성격상 여성 직원이 많은데 회사에서는 1년 단위의 재계약을 이용해 임신·출산 여성을 다 해고했다”며 “회사도 저를 대신할 적임자를 당장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는데 현재는 업무 경험이 많은 사람이 오래 근무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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