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들은 질문을 할 때 기승전결이 확실해서 기, 승, 전까지는 회의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 한국 작가를 향한 존경, 작품에 대한 전체적 감상을 설파한 후 결에 이르러 비로소 질문을 하는 반면 한국 작가들은 궁금한 점을 즉각 질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회의가 진행되면서 양국 작가들의 이러한 자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국 작가들은 점차 개최해줘서 고맙다, 훌륭한 낭독으로 들으니 내 작품의 격이 높아진 것 같다 등의 예의를 덧붙여가고 중국 작가들은 보다 직접적이고 상세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압록강 일대를 돌아보기로 한 여정이 취소되는 바람에 우리에게는 나흘이라는 시간이 고스란히 남았다. 차가운 압록강 뗏목 타기에 대비해 가져온 두툼한 방한복과 털모자는 어디에 쓰나, 먼발치에서나마 북한 땅을 보리란 설렘은 무엇으로 메우나, 공산당대회가 중요하겠으나 우리가 무슨 사고를 칠 거란 말인지, 일행의 투덜거림은 압록강 대신 지린성 송화강에 띄운 배를 타고 반나절이 지나자 차츰 잠잠해지다 그 강에서 낚아 올린 물고기로만 장만된 담백한 점심을 대할 즈음 거의 잦아들었다.
정월담(淨月潭)이라는 이름도, 아름다운 호수를 감싼 도로를 일주하고 원시림처럼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서 저마다 인생 샷을 찍으면서, 거대한 조각이 즐비한 창춘(長春)의 조각 공원을 거닐면서 우리 모두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처음 맞은 듯이나 즐거워졌다. ‘이만 하면 만족하시는지’ 하는 듯 멋진 호텔 방, 때마다 그 지역 최고라는 음식도 일행의 아쉬움을 달랜 요소들이었지만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건 동행한 지린성 작가들이었다.
서하진 경희대 교수·소설가 |
돌아온 후 자료집의 중국 소설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을 때 한 학생이 이런 작품, ‘왜 번역본이 안 나올까요’ 했다. 치매 노인의 죽은 아들을 대신해서 마을 사람들이 번차례로 아들 역할을 해주고, 마음을 터놓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청년이 아버지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노인에게 건네는 장면이었다. 번역문이며 축약된 것이었지만 문장은 간결하고 처연했으며 이야기는 슬프고 아름다웠다. 우화 늑대와 빨간 망토를 연상케 하는, 늑대에게 잡아먹힐 위기를 극복하고 돌아온 딸의 하소연은 아랑곳없이 심부름을 제대로 했는지 집요하게 되묻는 소설을 읽으며 한 학생이 ‘우리 엄마랑 비슷해요’ 했다. 맞아, 맞아 하며 손뼉을 치고 웃는 학생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랬다. 우리는 중국도, 중국 사람도, 중국 문학도 너무 모르고 있지 않나.
서하진 경희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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