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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에 ‘덕유산이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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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9 06:00:00 수정 : 2017-11-09 08: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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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수리는 답압성 탈모”/ 1997년 U대회로 케이블카 설치/ 쉽고 편한 정상행에 탐방객 몰려 / 年 150만명 밟으니 풀도 못 자라 산을 사랑하시는 여러분께.

안녕하십니까, 덕유산 인사드립니다.

얼마 전 신문에 제 친구 설악산에 대한 기사가 실렸더군요. 문화재청이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한쪽에선 ‘경제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선 ‘국립공원마저 난개발될 게 뻔하다’고 하면서 20년 넘게 갈등이 빚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인간 세계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논리를 이해하긴 힘듭니다. 다만 지난 20년 동안 케이블카를 몸소 겪은 당사자로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 이렇게 펜을 듭니다.

케이블카는 1997년 1월부터 운영됐습니다. 해발 700m에서 1520m 설천봉까지 총 2659m 길이에 걸쳐 있죠. 사실 저는 케이블카가 놓인 산 중에서도 운이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같은 해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맞춰 설치되다보니 관광용 케이블카뿐 아니라 스키장 곤돌라, 슬로프도 함께 깔렸거든요.

관광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다보면 옆쪽으로 나무 대신 풀만 깔려있는 구간을 볼 수 있는데, 선수용 스키슬로프 자리입니다. 1997년 대회 폐막과 동시에 사용이 중단됐는데 주변과 다르다는 게 여전히 표가 나죠.

나무와 풀이 무성했던 케이블카 탑승장 주변도 지금은 그냥 흙바닥입니다. 영구 ‘원형탈모’가 생겼다고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제 마음을 이해하시려나요? 그것도 학교 운동장 네댓 개 크기로 말이죠.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최고봉인 향적봉(해발 1614m)까지 올라가는 탐방로가 나옵니다. 데크와 계단이 깔려있어 0.6㎞를 올라가는 구간이 여느 오르막길을 걷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서너 살배기 아이들도 성큼성큼 걸어올라가는 걸 보면서 지난 4일 생전 처음 등산바지를 사 입고 찾아온 기자는 조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케이블카 상부 탑승장에서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탐방객들
탐방로에는 포토존도 세 군데 마련돼 있습니다. 원래는 탐방로가 아니었는데 탐방로를 넘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훼손과 안전 우려 때문에 아예 탐방로를 연장해 만들었어요.

단풍철이 지난 11월 초인데도 제 머리 끝까지 찾아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 해 평균 저를 찾는 탐방객은 170만명 정도인데 90%는 정상정복이 목표입니다. 그 가운데 70만명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지요. 탐방객의 41%가 케이블카를 타는 셈이니 케이블카가 제 인기 비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이렇다보니 상부 탑승장이 있는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의 구간은 전국 15개 산악형 국립공원 주요 탐방로 가운데 스트레스 지수가 99.99로 제일 높습니다. 워낙 많은 이들이 밟고 지나가 그 압력(답압) 때문에 풀 한 포기 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번엔 답압성 탈모라고나 할까요.

제 정수리는 또 어떻고요. 겨우 1000㎡ 남짓한 좁은 공간을 매년 150만명 정도가 밟다보니 원래 돌과 흙만 있던 이곳도 곳곳이 훼손됐습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흙을 채워넣기도 했죠.

향적봉 답압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 사람들의 답압(발로 밟는 압력)으로 훼손돼 지난해 흙을 채워넣었다.
저만 이런 건 아닙니다. 설악산 권금성도 1971년 케이블카가 놓인 뒤로 반짝반짝 민둥산이 됐습니다.

우리나라 산악형 국립공원에는 탐방로가 총 436개 있습니다. 이 가운데 90% 정도가 정상을 향하죠.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의 이부영 해설사는 “몇 시간 안에 어디 봉우리를 밟았는지를 서로 경쟁하는 산행문화 때문인 것 같다”고 하네요.

연간 산악형 국립공원을 찾는 탐방객은 3000만명에 이릅니다. 저를 찾아오는 탐방객을 단위면적으로 나누면 1㎢당 7410명이 되는데 이게 얼마나 많은 수치냐면 말이죠, 미국 국립공원 중 방문객이 가장 많은 그랜드캐니언(1㎢당 1198명)이나 요세미티 국립공원(1㎢당 1652명)보다도 4∼6배나 많답니다. 더구나 그 많은 사람 대부분이 제 좁은 머리 꼭대기를 한 번씩 밟고 가니 성할 수가 있나요.

‘덕이 많아 넉넉하다’(德裕)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너무 엄살을 떤다고 타박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건 저의 체질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해발 약 1500m, 그러니까 상부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는 설천봉부터는 ‘아고산(亞高山)’이라고 하는 지역이 시작됩니다. 기온이 아주 낮고, 바람은 센 데다 폭설·폭우가 잦은 혹독한 환경이죠. 식물이 많아야 유기물이 공급돼 토양이 발달하고, 동물도 많이 사는 법인데 아고산은 몇 안 되는 식물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죠.

공우석 경희대 교수(지리학)는 “현재 아고산에 사는 동식물은 빙하기 때 고위도에서 이동해 와 살아남은 것들”이라며 “그래서 아고산을 ‘빙하기의 피난처’라 부른다”고 설명하더군요.

그런데 기후변화 때문인지 저와 지리산, 설악산 일대의 아고산대 나무들이 집단고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지리산 반야봉 남사면에서는 구상나무 80%가 고사했죠.

나무야 사서 심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게 또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저지대에서 나고 자란 나무를 아고산에 심으면 같은 아고산 침엽수라 할지라도 버텨내지를 못해요. 그리고 저희가 이래봬도 국립공원인데 아무 나무나 막 심을 수야 없죠.

각 국립공원 아고산대에 사는 자생종의 종자를 받아서 실험실에서 키운 다음 아주 천천히 아고산 환경에 적응시킵니다. 그 기간만 해도 5∼10년이 걸리죠.

이 귀한 묘목을 어디에 심을지도 고민해야 해요. 올해는 ‘국립공원 아고산생태계 보전계획’ 원년인데,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집단고사가 일어난 곳은 아고산 침엽수가 살기에 더는 부적절하다고 보고 대체 서식지를 찾고 있어요. 아고산 나무 복원사업의 성패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공단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구상나무 유전자원을 초저온 동결보존 기술로 꽁꽁 얼렸어요. 훗날 좋은 대체지가 나타나면 해동해서 잘 키우라고요. 마치 ‘냉동인간’처럼 말이죠.

복원사업이 부분적으로 추진된 곳도 있는데요,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2차 훼손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어요.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실행위원장은 “최근 지리산 중봉에서 비법정탐방로 복원 사업이 진행됐는데 자재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기존 나무가 잘려나가는 등 2차 훼손이 일어났다”며 “복원 매뉴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생태적으로 취약한 곳이다보니 여러분의 너무 많은 관심은 저에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랍니다.

그렇다고 저를 찾아오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 어깨에 바다인 듯 눈밭인 듯 펼쳐진 운해는 정말이지 저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절경이죠. 다만, 저의 아름다움은 꼭 정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저지대 둘레길은 또 그 나름대로의 감동을 선사하죠. 

구천동계곡 덕유산 저지대 둘레길인 '어사길', 숲길과 계곡을 따라 3.3km의 돌길이 이어진다.
어사길 장지뱀 어사길에서 만난 도마뱀
해발 700∼900m에 있는 ‘어사길’을 한번 보실래요. 1구간에 들어서면 참나무, 잣나무가 푸근하게 품어주는 숲길이 나타납니다. 하늘다람쥐와 담비, 너구리, 오소리가 어디선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요. 이날 저를 찾아온 기자는 장지뱀과 마주쳤는데요, 뱀이라는 글자 때문에 징그러울 것 같지만, 꼬리까지 해봐야 어른 한 뼘이 될까 말까 한 작고 귀여운 도마뱀이랍니다.

1㎞쯤 지나면 2구간으로 이어지는데 여기부턴 구천동 계곡과 가까워져요. 맑다는 말로도 담지 못할 만큼 깨끗한 계곡 옆으로 오색단풍이 가을의 끝자락을 알립니다. 계곡길은 온도차가 심해 생강나무, 참나무가 더 노랗게 물들죠.

마지막 3구간은 50년 만에 개방된 곳이에요. 숲길과 계곡길이 어우러졌죠.

다른 국립공원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둘레길을 품고 있어요.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을 보며 제가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정상정복만이 산행의 전부는 아니라고요. 등산이 아닌 입산의 매력을 꼭 한번 느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색케이블카를 놓더라도 대청봉까지 연결 안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대청봉이 지척(1.4㎞)에 있어 결국엔 탐방로가 열릴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서두에 말했듯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저로서는 가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설악산이 ‘스트레스 지수 99.99’를 찍고 있는 저의 전철은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년 11월8일 덕유산 올림.

무주=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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