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아르노 회장, 케어링그룹 피노 회장, 그리고 할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피트 등 전세계 슈퍼컬렉터들에게 각광받는 작가 배준성의 국내 개인전이 ‘화가의 옷 - 화이트 캔버스’란 제목을 달고 더 트리니티 갤러리(THE TRINITY GALLERY)에서 11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통적 방식의 그리기부터 출발해 렌티큘러 회화기법과 자신만의 총체적 스타일을 구축해 온 배 화백의 ‘화가의 옷’ 연작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누구나 알만한 거장들의 ‘명화’ 이미지를 정물처럼 재배치하는 작업이다. 고전 명화 속 일부 모델이나 옷, 배경을 현재로 끄집어내 공간에 배치하면서 사건이 발생하고, 의미가 바뀌어 재명명 되는데, 이는 정물성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가의 시각에서 비롯된다.
정물화가 주를 이루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국내 미발표 신작 10여점을 포함한 13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더 트리니티 갤러리의 박소정 디렉터는 “작가가 개별적 레이어를 덧대는 방식을 통해 새롭게 발생된 장면들이, 작품을 보는 각도와 시선에 따라 각자 다른 이야기의 환영을 경험하게 되는 주도적 감상의 묘미를 선사 할 것”이라고 귀띔한다.
배 화백의 작품에 달린 제목은 ‘the Costume of Painter’로 시작한다. 이는 화가가 그리는 옷이란 뜻이자, 화가의 눈에 의해 파생된 특정 레이어라는 의미다. 화가가 모델을 눈으로 더듬거리며 그릴 때, 화가의 눈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 또다른 모델을 탄생시키지만 화가의 자의성 언저리에서 그려진 모델은 화가에게 역으로 다시금 새로운 그림그리기를 요구한다. 이는 화가가 그리는 그림의 물리적, 심리적 시간에 의해 발생한다. 결국 배준성의 ‘화가의 옷’은 화가가 그리는 옷이 아니라 옷을 그리다가 발생하게 되는 화가의 별안간 사건을 뜻하는 것이다.
‘렌티큘러’에 대한 배 화백의 추억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작업노트를 펼쳐 보았다.
“어릴 적 책받침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6년을 거의 서기부장으로 지낸 나로서는, 글쓰기를 주무기로 삼았던 나로서는, 당시 내게 책받침이란 것은 다른 친구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감을 주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적어도 3, 4가지 정도의 책받침을 항시 보유하고 있었다. 승부에 예민했던 내가 당시 그렇게도 유행했던 책받침 깨기를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을 정도로 책받침은 나의 보물이었으며, 나의 자존심이었다. 이렇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책받침들 중 최고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스마일마크가 정 가운데 보란 듯이 노란빛깔을 띄며 웃고, 또 우는 이른바 ‘변신 책받침’이었다. 이것이 어릴 적 렌티큘러(lenticular)와의 첫 만남이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