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철부지 나는, 초등학교 상급반 아이가 맡는 도서위원의 자격으로 늘 도서관에 상주했었다. 담당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도서의 대출과 관리를 책임지는 일이었는데 그 위세가 자못 당당했다. 특히 ‘진달래와 철쭉’이라는 너무도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빌리려는 아이들이 줄을 서 있곤 했다. 나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도서관에 붙박여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오늘에 이르러 일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된 연유도 결국 그 시기의 독서 체험에서 말미암은 셈이다. 시골 면 소재지의 초등학교를 거쳐 도회로 나간 중학교 때에도 점심시간이면 언제나 도서관에 있었다.
중학생 탐독자의 눈에 기가 막히도록 재미있는 책은 ‘삼국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였던 터인데, 그 중학교 도서관에 매우 자세하고 긴 분량으로 된 대하소설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고대사를 통해 역사적 인물의 교훈과 인생의 경륜을 배우는 이 기이한 내용을, 그 의미도 모른 채 때로는 점심을 거르며 읽고 또 읽었다. 유비 삼형제의 도원결의는 왜 그렇게 훌륭해 보였으며, 난세의 간웅 조조는 왜 그렇게 미웠으며, 완전인 제갈공명은 어떻게 그렇게 어린 독자를 탄복하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 이 물색 모르던 어린 날의 독서가 평생 학문을 좋아하는 습관이 됐다.
책을 읽지 않고서 한 개인의 내면이 성장하거나 확장되기 어렵다. 개인에게도 입력보다 출력이 많으면 그 내부가 고갈되기 마련이지만 국가와 국민의 단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책 읽는 나라, 책 읽는 국민이 되지 않고서 진정한 선진사회가 될 가능성은 없다.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기 위해, 그리고 존중할 만한 품격을 갖기 위해서는 생각의 근본을 형성하는 책 읽기 이상의 자양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너무도 중요하지만 너무도 상식적인 개념이라 모두가 간과하기 쉽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
독서와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려는 국제적인 노력의 결과다. 왜 4월 23일인가 하면 몇 가지 뜻깊은 근거가 있다. 우선,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축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이 이날이다. 그런가 하면 인류문학사를 장식한 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사망일이 동일하게 1616년 이날이다. 사망일을 축일로 해도 좋을 만큼 세계문학의 진일보를 기록한 문인을 기린다는 의미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날을 ‘책 드림(Dream) 날’로 정했다. 물론 책의 날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줄이라도 책을 읽는 일이다. 개권유익(開卷有益)이라 했듯이 책은 열기만 해도 이롭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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