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메이저리그는 흥행을 한단계 더 높이기 위해 거인 베이브 루스를 보내고 오타니를 맞이하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왼쪽 사진은 1948년 6월13일 양키구장에서 열린 베이브 루스 백넘버 영구결번식 겸 은퇴식으로 거인의 뒷모습을 찍은 나다니엘 페인은 이 사진으로 퓨리처상을 받았다. 오른쪽은 지난 4일(현지시간) 오타니가 클리블랜드전 5회말 투런 홈런을 터뜨린 뒤 볼 궤적을 보고 있는 모습. LA=AP 뉴시스 |
MLB가 빼든 흥행카드는 일본산 수입품 오타니 쇼헤이(24·LA 에인절스)이다. 지난 6일 현재 투수로서 1차례, 타자로 3경기에 나선 오타니는 MLB 기대를 충족시켰다.
미식축구(NFL), 프로농구(NBA), 남자골프(미PGA투어) 등과 팬싸움에서 밀리는 듯 모양을 보였던 MLB이기에 오타니가 100여년전 세계 프로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전설과 같은 존재가 되길 빌고 또 빌고 있다.
그 전설은 프로야구 경기자체를 바꿔 놓았던 영원한 홈런왕 베이브 루스(1895년 2월 6일~1948년 8월 16일)이다. 베이브 루스의 등장으로 MLB는 미국 국민스포츠 자리를 확실히 궤찼으며 그의 등장으로 인해 프로스포츠는 돈이 되는 산업, 스포츠스타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못지않는 돈과 명성을 누리게 됐다.
◇ 24살의 베이브 루스와 오타니, 같고도 다른 점
▲ 1919년 베이브 루스 팀전체 홈런과 같은 29홈런, 투수로 9승
보스턴 레드삭스 에이스 시절 베이브 루스의 투구 모습. 이때만 해도 늘씬한 몸매를 자랑했다. |
191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베이브 루스는 이듬해부터 팀 주전투수로 이름을 날렸다.1915년 18승, 16년 23승, 17년 24승 등 최정상급 투수로 어마무시하게 상대방을 낚았다.
그가 24살이 되던 1915년은 베이브 루스 인생과 프로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해였다.
투수로는 9승5패(평균자책점 2.97)의 성적을 보였으나 타석에 들어서 29개의 볼을 담장 넘어 날려 보냈다. 그해 보스턴 나머지 선수들이 친 홈런수와 맞 먹었다.
1919년 투수로 17경기에 나섰던 베이브 루스는 타자로 130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2,홈런 29개, OPS(출루율+장타율) 1.113을 남겼다.
▲ 2018년 오타니, 이도류(二刀類)의 메이저리그 흥행카드
지난 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 나와 6이닝 3실점으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승을 따낸 오타니. LA=AP 뉴시스 |
이도류(투타 겸업)로 유명한 오타니 쇼헤이(1994년 7월5일생)의 24살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8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 지난 6일까지 타자로 3경기, 투수로 1경기에 나왔다.
정규시즌 직전 시범경기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2018시즌 투수로서 1경기에 출전해 6이닝 동안 3피안타 1볼넷 6탈삼진으로 3실점(평균 자책점 4.50)으로 1승을 챙겼다.
타자로선 3경기서 14타수 6안타 2홈런 5타점, 타율 0.429의 매서운 솜씨를 보였다. 이 상태로만 쭉간다면 99년 전 베이브 루스의 뺨을 때리고도 남는다.
◇ 선발 승 따낸 다음 경기서 홈런은 베이브 루스 이후 오타니가 유일
5일 클리블랜드전에서 호쾌한 타격을 선보이고 있는 오타니, LA=AP 뉴시스 |
오타니는 지난 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첫 선발승을 따낸 다음 경기인 4일 클리블랜드전에서 우완 조시 톰린을 두들겨 우중월 3점포로 뺏어냈다.
선발승을 거둔 다음 경기에서 타자로 홈런을 친 것은 1921년 베이브 루스 이후 오타니가 97년만에 처음이다.
◇ 베이브 루스, 지금 뛰었다면 '400승+800홈런' 평가
팬들을 위해 호쾌한 홈런 쇼 이베트를 선보이고 있는 슈퍼스타 베이브 루스. |
베이브 루스는 투수로 94승 46패, 평균자책점 2.28이라는 최정상급 기록을 갖고 있다.
1916년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14이닝 1실점 완투, 1918년 월드시리즈 4차전 8회 2실점하기까지 29와 2/3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월드시리즈 한경기 최다이닝 완투승(14이닝)은 베이브 루스의 것이고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은 43년이 지난 1961년에야 깨졌다.
타자 베이브 루스를 말하라면 홈런 역대 3위(714개), 장타율 역대 1위(0.690), OPS 역대 1위(1.164) 3가지만 제시해도 그만이다.
베이브 루스는 1920년 뉴욕 양키스로 팔려 가면서 사실상 투타 겸업을 중단, 홈런생산에 열중했다.
지금처럼 지명타자제(1973년 아메리칸 리스서 최초 도입)가 있었다면 '타자 800홈런+ 투수 400승'을 올렸을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 오타니, 165km 기록한 광속구 투수
2016년 오타니가 165km(102.5마일)의 광속구 던진 당시 전광판. |
오타니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일본프로야구 닛폰햄에서 뛰면서 85경기출전, 82경기 선발,13완투 42승(7완봉) 15패 1홀드 평균 자책점 2.52를 보였다.
타자로선 403경기에 나와 1035타수 296안타, 48홈런, 타율 0.286과 OPS 0.859를 보였다.
오타니는 2014년 10월5일 라쿠텐전에서 구속 162km를 보여 일본프로야구 신기록을 세운 뒤부터 '광속수'투수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후 해마다 최고속도를 경신, 2016년 165km까지 속도를 높였다.
◇ 차이점…체격, 데브볼·라이브볼, 마운드 높이, 좌투좌타, 우투좌타, 지명타자
▲ 근력은 베이브 루스, 투수 조건은 오타니
야구 배프 3개를 장난스럽게 움켜쥐고 있는 베이브 루스. 타고난 근력, 순발력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
좌투좌타의 베이브 루스는 키 188cm, 체중 100kg로 알려져 있지만 사진과 경기장면, 당시 동료들과의 체격비교 등을 해 보면 100kg은 능가하는 장사 타입이다.
반면 오타니는 193cm, 86kg으로 날렵하고 순간 반응속도와 유연성이 좋다. 체력측정 결과 등이 없어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근력은 루스, 투수로서 조건은 오타니가 좀 더 좋아 보인다.
▲ 1920년 이전 데드볼, 이후 라이브볼
메이저리그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점 중 하나가 데드볼 시대(Dead-ball era)와 라이브볼(Live-ball era)이다.
데드볼 시대는 1919년무렵까지 이어졌다. 경비절감 등 여러 이유로 웬만하면 경기도중 볼을 바꾸지 않고 사용했다. 그로 인해 곳곳이 터지고 시커멓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볼이 경기에 사용됐다.
투수들은 공에 교묘하게 상처를 내거나 침을 발라 기기묘묘한 볼 회전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시커멓고 너덜너덜한 볼을 타자들이 때려봤자 멀리 나가지 못했다. 데드볼 시대는 볼이 죽은 것처럼 나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투수들은 설렁설렁 던져도 승리를 챙길 수 있어 십몇이닝 연투, 연일 투구, 수백승 등 있을 수 없는 기록들을 남겼다. 베이브 루스가 대투수로 자리잡았던 것도 데드볼의 덕도 있었다.
1920년 이후 땅에 한번 바운드된 볼은 반드시 교체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또 침을 바르는 등 부정투구 역시 금지됐다.
그 결과 타구가 마치 살아 멀리 날아가는 듯 비거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났으며 가뜩이나 힘이 좋았던 베이브 루스는 베이브 루스는 1918년 11홈런, 1919년 29홈런에서 1920년 무려 54개의 홈런, 1921년 59개의 홈런을 터뜨려 팬들을 열광시켰다.
▲ 투수 베이브 루스는 오타니 보다 5인치(12.7cm) 높은 곳에서 던져
투수로서 베이브 루스와 오타니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또 다른 점은 마운드 높이.
메이저리그는 1903년부터 1968년까지 마운드 높이를 15인치(38.1cm)를 유지했다. 하지만 1968년 한 시즌 팀 최다득점이 4.5점(신시내티)에 그치고 타율 0.301로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극심한 투고타저로 팬들의 관심이 멀어져야 마운드를 10인치(25.7cm)로 무려 5인치나 낮추는 극약처방을 했다.
5인치 차이는 타석에서 타자가 바라 볼 때 10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볼이 2층높이 정도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느낄 만큼 엄청난 것이다.
우리나라도 10인치에서 출발했다가 투수가 동네북이 되자 2000시즌 13인치로 높였다. 역으로 타자들이 끙끙대 2007시즌 다시 10인치로 원위치했다.
▲ 지명대타, 투수 분업
베이브 루스와 오타니 시대의 또다른 점은 지명타자제.
베이브 루스시대엔 지명타자가 없었다. 지금 오타니는 지명타자제를 시행 중인 아메리칸 리스 소속이다.
내셔널리그보다 뒤늦게 출범한 아메리칸 리그는 볼거리를 더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1973년 지명타자제를 도입했다. 내셔널리그는 메이저리그 뿌리라는 자존심, 투수의 타격도 야구경기 일부라는 점 등을 들어 지명타자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마운드에 서서 죽을 힘을 다해 던진 뒤 곧장 타석에 들어서면 타자로서 제 경기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24살 이전 베이브 루스 기록(투수 189경기, 홈런 49개)은 의미가 있다.
오타니는 투수로서 자질이 더 뛰어나지만 그 스스로는 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에 메이저리그에 올 때 지명타자제가 있는 아메리칸 리그를 택했다.
▲ 베이브 루스는 오로지 왼쪽, 오타니는 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손으로 치고
베이브 루스는 좌투좌타, 오타니는 우투좌타이다.
베이브 루스는 본응에 따라 왼손으로 던지고 쳤다. 오타니는 철저한 계산과 훈련끝에 우투좌타를 택했다. 신체 밸런스와 운동신경 발달에 양쪽 모두 사용하는 것이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류현진(LA 다저스)은 좌투우타이다.
◇ 오타니, 2018시즌 두자리수 승수 + 20홈런이면 "베이브 루스, 이리 와" 외칠 자격
오타니는 일본대표팀 에이스로도 많은 활약을 했다. 타석에선 왼쪽에 서지만 덙질 땐 오른손을 이용한 정통파 투수이다. |
오타니는 2016년 일본프로야구에서 투수로 10승 4패, 타자로서 104경기에 나와 22홈런과 타율 0.322을 기록했다. 승수, 홈런, 타율 모두 A급 투수와 타자 기준점을 넘어섰다.
따라서 오타니가 2018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서 10승 이상, 타자로 16홈런 이상을 친다면 '제2의 베이브 루스'로 불릴 자격이 있다. 그 이상이면 '오타니' 그자체로 불릴 것이다.
투수로서 오타니는 100마일의 빠른 볼을 갖고 있기에 10승이상을 따낼 가능성은 16홈런보다 달성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지난 6일 LA 에인절스는 보물 오타니를 아끼기 위해 '6인선발체제로 주1회 등판, 타자로는 주 2~3회 출전'이라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오타니가 타자로서 등장할 기회는 다른 지명타자에 비해 절반정도에 불과한 70~80경기 가량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본시절처럼 9경기에 1개꼴로 홈런을 때리면 10개 정도, 베이브루스처럼 4경기마다 1개 이상을 때린다면 홈런 20개를 넘길 수 있다. 참 어려운 숙제다.
경기수 부족과 함께 일본프로야구보다 훨씬 빠르고 묵직하고 예리한 볼을 가진 상대투수와 싸워야 하고 타격폼이 간결한 편이 아니라는 약점도 있다.
또 장거리 이동, 많은 경기수 등도 오타니 발목을 잡고 있다.
베이브 루스가 천국에서 오타니를 응원할까, 아니면 영원한 전설로 남고 싶다며 응원하지 않을까 궁금해 진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