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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4월, 우리에겐 어쩌면 ‘애도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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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3 23:44:09 수정 : 2018-04-23 23: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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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피에타… 예술 속 ‘메멘토 모리’ / ‘애도하는 사람’ 존재 그 자체가 위안
밀레의 그림 ‘만종’의 원제는 ‘삼종기도’였다. 만종이 울리면 가엾게 죽어간 이들을 위한 삼종기도를 경건하게 올리게 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렸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감자 바구니가 실은 관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가난으로 인해 시골 농부 부부의 아이가 굶어 죽게 된다. 그러자 부부는 죽어서라도 잘 먹으라고 감자밭에 묻어주기로 하고, 매장 전에 아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린다. 이 사연을 그렸는데 그것을 본 친구가 너무 침울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밀레가 관 위에 덧칠해 감자 바구니로 바꿨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만종’은 애도의 주제를 떠올리게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 라틴어가 아니더라도 애도는 생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여서 예술에서 많이 다뤄졌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부터 빈센트 반 고흐 등 여러 화가들이 그린 ‘피에타’, 르네상스 시기 네덜란드 출신 화가 디르크 바우츠의 ‘애도’에 이르기까지 애도의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일본 작가 덴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도 애도의 생철학적 의미를 탐문한 소설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피살되는 장면을 무기력하게 목격한 아이가 있었다. 친구를 지켜주지 못하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힘들었던 아이는, 1주기 날 현장에 갔다가 “너도 내 죽음을 잊으려고 온 거지. 결국은 다 잊어버릴 거지”라는 망자의 목소리를 환청처럼 듣고 기절한다. 그 후 1년을 더 고통스럽게 지낸 아이는 2주기 날 애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직접 알지는 못하지만 망자를 위해 애도한다는 남자는 말한다. “그녀는 누구에게 사랑받았습니까.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습니까.” 그에게 친구의 얘기를 해주면서 아이 또한 깊은 애도작업을 수행한다.

애도하는 사람 사카쓰키 시즈토는 생면부지의 망자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기억’하고 애도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이들이 차별 없이 존재하며 그만큼 사랑받고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라는 웅숭깊은 가치를 환기한다. 이런 존재는 다른 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가치와 자존감이 제고되기 때문이다. 작중 시즈토가 애도하는 모습을 목격한 주간지 기자 마키노 고타로도 그런 경우다. ‘애도하는 사람’의 존재 그 자체가 위안이 된다.

“이 사람도 분명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 무슨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다고 애도해주겠지? 어디의 누구인지 몰라도 너에게는 분명 좋은 점도 있을 거라고, 열심히 살았을 거라고 (…)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 존재했다고(…) 기억해주겠지?” 아울러 마키노는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음을 잊는 것에 대한 죄책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같은 것들이, 애도하는 사람의 의미를 더욱 생각하게 한다는 성찰을 보인다.

4·3, 4·16, 4·19, 이런 날들이 들어 있는 4월. T S 엘리엇에게 ‘가장 잔인한 달’이었던 그 4월이 우리에겐 어쩌면 애도의 달이 아닐까 싶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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