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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안뜰] '복장 터진다'라는 말의 유래…불상에 넣는 물품서 연유

입력 : 2018-05-21 20:56:53 수정 : 2018-05-21 20: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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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복장 터진다’라는 말의 유래 / 불상에 신성 부여하기 위해 원통형 용기 ‘후령통’에 넣어 / 너무 많은 것 집어넣다보니 아슬아슬한 상태 되기 일쑤 / 13C 조성 불상서 복장물 발견 / 고려시대때 의례 확립 된 듯 / 귀한 물건 많아 몽골군 표적도…왜란·호란으로 조선 피폐화 / 조선후기 때부터 많이 사용 / 넘쳐나는 세속 염원 감기도 / 복장터질 일없는 석탄일 되길 “복장 터진다”는 말이 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거나 써본 적이 없는 말이라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다. “복장 터진다”는 말은 흔히 속이 매우 답답한 상황에서 쓰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꽉 막힌 상황에서 흔히 “아이구 복장 터지네~” 라고들 한다.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겠는가.

그렇다면 “복장 터진다”는 이 말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불상의 몸 안에 넣는 물품을 복장(腹藏)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면 어리둥절해할 독자들이 있을 듯도 싶다. 

송광사 복장유물의 후령통.
◆흔들려서는 안 되는 불상의 심장 후령통

불교에서는 불상의 몸을 사람처럼 생각하고, 그 안에 부처님의 신성(神性)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물건을 넣는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후령통’(候鈴筒)이라 부르는 원통형의 용기이다. 여러 종류의 복장물이 들어있는 후령통은 부처의 목소리를 상징한다고 알려졌다. 말씀 없는 부처님이 어디 있겠는가. 후령통을 통해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후령통이야말로 복장의 핵심인 셈이다.

이 후령통을 불상의 목 아래 가슴 중앙에 넣는다. 불상에 신성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근원인 까닭에 후령통의 위치는 중요하다. 생명을 얻기 전까지 불상은 그저 물질을 깎아 만든 조각상에 불과하다. 부처님의 목소리이자 생명의 근원인 후령통을 심장이라고 생각해보자. 심장이 제자리에 있어야 건강한 사람인 것처럼 부처의 후령통 역시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몸 안이 텅 비어있는 불상의 가슴 정중앙에 후령통을 고정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황초복자’(黃?幅子·황금색 비단 보자기)로 감싼 후령통을 넣고 주위에 비단, 진언(眞言) 인쇄물, 경전, 옷가지 등을 채워 넣는다. 흔들리면 안 된다. 불자들의 마음은 한결 같다. 후령통이 움직이지 않도록 잔뜩 집어넣는다. 부처님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후령통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꽉꽉 채웠겠는가.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집어넣어서 터질 듯이 아슬아슬한 상태가 되니 “복장 터진다”는 말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몽골군의 표적이 된 복장… 13세기부터 시작된 불교 전통

언제부터 복장을 넣고, 언제부터 “복장 터진다”는 말이 생겼을까. 복장을 넣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에 이미 시작되었지만 말이 생겨난 것은 조선 후기일 것이다.

현재까지 고려의 불상 중 10여구에서 복장물이 조사되었고, 그중 1283년에 조성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은제아미타삼존불좌상의 복장이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로 추정된다. 연대가 정확하지 않지만 13세기에 조성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관음보살좌상에서도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이를 보면 늦어도 13세기에는 불상에 복장을 넣는 의례가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몽골군이 복장물을 약탈해 갔다는 내용이 전한다.
현전하는 실물 복장물의 연대보다 글로 남은 복장에 관한 언급은 더 이르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낙산사 관음상의 복장을 몽골군에게 약탈당해 다시 만들어 넣었다는 내용의 ‘낙산관음복장수보문’(落山觀音腹藏修補文)이 실려 있다. 낙산사 관음상이 1235년의 몽골 침략 때 약탈된 것이 분명하므로, 적어도 13세기 전반에는 불상이나 보살상에 복장을 넣었음을 알 수 있다.

이규보는 “우리 대성(大聖·관음보살)의 귀한 몸도 훼손을 당했으며 그 형체는 간신히 보존되었으나 배 속에 모신 진귀한 복장은 모조리 빼앗기고 흩어져 텅 비었다…삼가 심원경(心圓鏡) 2개와 오향(五香), 오약(五藥), 색사(色絲) 등을 갖추어 복중을 채워 예전과 다름없이 갖추었다”라고 했다. 관음보살의 몸 안에 귀한 물건을 넣었고, 이것이 진귀함을 알았기 때문에 몽골군이 약탈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또 겉모습은 몽골군이 훼손하지 않았지만 속이 빈 관음보살은 이를 보는 마음을 아프게 하니 다시 복장을 채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규보가 넣은 위의 물품은 조선시대의 복장에도 들어가는 물품이다. 여기서 그는 후령통을 말하지 않았으나 복장 납입의 깊은 뜻과 전통은 이미 13세기 전반부터 우리나라에 이어진 것임이 분명하다.

◆임란과 호란이 만든 ‘복장 터진다’

조선에서 “복장 터진다”는 말이 시작된 건 두 차례의 큰 전란과 관계가 있다.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거치면서 조선의 산하는 피폐해졌다. 국란의 위기에 승병장과 승군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이는 조선 전기 내내 불교의 숨통을 옥죄던 억불숭유의 족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풍비박산의 산천에서 절이라고 멀쩡할 리 없었다. 무너진 절을 다시 세우고, 파괴된 불상과 불화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단기간에 많은 불상을 만들고 복장을 제대로 넣을 수 있게 ‘조상경’(造像經)도 편찬됐다. 일종의 ‘복장 넣기 지침서’인 셈이다.

17세기에 조성된 불상 가운데 지금까지 조사된 300여점의 대부분에서 복장이 발견되었다. 복장에는 불상의 조성 연대와 경위, 조각을 한 승려들에 관한 정보를 적은 발원문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불상의 조성은 1610년부터 1710년까지 약 100년 사이에 집중되었다. 조사된 불상이 300여점이므로 조사되지 않은 불상과 복장이 발견되지 않은 불상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500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조성된 수로 보아도 조선 후기는 가히 불교미술의 르네상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과 다르다면 값비싼 금동불 대신 상대적으로 제작비용이 덜 드는 목조불상이나 소조불상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게다가 부처님뿐 아니라, 보살상이나 천왕상까지 복장을 채워 넣었다. 복장을 통해 이들 조각은 신(神)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격식을 갖춘 복장은 이규보가 언급한 심원경과 오곡, 오향 말고도 다양한 물품이 들어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후령통이고, 그 안에 5개의 보병(寶甁)을 비롯해 불교식 우주관을 상징하는 곡식과 약, 향, 개자(겨자) 등을 5개씩 세트로 만들어 넣는다. 무엇보다 이 후령통이 제자리에 고정되도록 다른 물품들을 채워 넣어야 한다. 여기에는 ‘법화경’(法華經),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육경합부’(六經合部)와 같은 경전과 여러 종류의 진언을 붉은 주사로 인쇄한 종이, 비단, 옷 등이 들어간다. 10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불상을 만들었고, 그 안에 중요한 경전과 값진 물품을 가득 욱여넣었으니 “복장 터진다”는 말이 뭇 사람의 입에 오르게 된 것이다.

◆넘쳐나는 세속적 염원… 복장 터질 일 없는 석탄일 되길

복장으로 들어가는 물품은 종교적 상징을 지닌다. 불교 경전이나 진언, 즉 주문을 인쇄한 종이는 모두 불교 신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런데 복장에는 의복도 포함된다. 왜일까.

전북 완주 송광사의 본존불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나온 복장물 중 하나인 경안군의 저고리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2009년 전남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조사하던 중에 다량의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그중에는 여자 저고리와 배자(褙子)가 1점씩 있었다. 저고리 안감 등판에는 나인(內人) 노예성이 1662년 1월에 소현세자의 아들 경안군(慶安君·1644~1665)과 그 부인 허씨(許氏), 그 외 박씨와 노씨, 윤씨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발원문이 적혀 있었다. 또 배자에는 유씨의 보체장수(保體長壽)를 기원한다고 썼다. 소현세자만큼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이회가 경안군에 봉해진 지 3년 만에 장수의 염원을 담아 저고리를 복장으로 넣었지만 그 기원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의복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강원도 평창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발견된 소위 세조의 저고리일 것이다. 1984년에 발견된 이 저고리는 발견 즉시 국내 최고(最古)의 어의(御衣)로 명성을 떨쳤다. 앞서 1979년에는 대구 파계사 관음보살상에서 영조의 어의가 발견되었고, 2016년에는 경북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불좌상의 복장에서 광해군의 부인인 유씨의 저고리가 발견된 바 있다.
강희정 서강대 교수
의복을 복장에 넣은 까닭은 살아있는 이의 무병장수와 돌아가신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왕실의 기원을 담아 옷을 복장에 넣은 경우는 적지 않았다. 복장이 터질까 우려하는 이유는 불상에 부처로서의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넣는 후령통 때문이 아니다. 너무 많은 경전과 다라니, 의복, 비단 탓이다. 성공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세속적인 염원을 지나치게 내세운 까닭이다. 석탄일을 맞아 세상사 두루 복장을 넣되 복장 터질 일 없는 중도(中道)를 기원해 본다.

강희정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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