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드 레인’(감독 미카엘 살로먼)은 홍수를 틈탄 범죄를 다룬 영화다. 미국 시골마을 헌팅버그가 호우로 침수되면서 주민들이 대피하는 위급한 상황에도 현금 운송용 방탄 트럭을 운전하는 톰(크리스천 슬레이터)은 베테랑 삼촌 찰리(에드워드 에스너)와 함께 300만 달러를 운송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현금운송 트럭은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강의 범람으로 도로에 갇혀버리고, 갱단 짐(모건 프리먼) 일당의 습격을 받게 된다. 물은 어느새 허리까지 차오르고 갱단과 사투 끝에 찰리는 사망하고, 톰은 겨우 돈 가방을 감추고 갱단을 피해 도망하는 신세가 된다. 게다가 성실했던 보안관(렌디 퀘이드)마저 톰의 돈가방을 본 후 이를 탈취하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보안관은 댐의 수위조절을 하는 조수까지 끌어들여 홍수 속 진흙탕 추격전은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계속되는 폭우에 수위조절 능력을 잃은 댐이 터지면서 막대한 양의 물 폭탄이 마을을 덮치게 된다.
이 영화는 홍수 피해를 가시적으로 증폭시키면서 인간의 이기심과 겹쳐놓는다. 보안관이 갱단보다 더 악하게 변모한다는 설정은 비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과하게 될 때 엄청난 피해를 주는 양면성을 지닌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영화 초반까지는 선한 캐릭터였던 보안관은 홍수라는 자연재해에도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는데, 호우 대피 중인 시장은 그가 재선에 떨어졌다고 비아냥거린다. 시장이 지나가자 시장에게 저주를 퍼붓는 부하에게 보안관은 저런 자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나중에 악한 인물로 돌변하지만 이 말만은 인상적이다.
장마기간에 맑은 날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장마든 태풍이든 우리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자연재해의 큰 피해는 대부분 인간의 부주의에 의해 빚어졌다. 눈이 100개 달린 그리스 신화 속 아고스가 아닌 인간의 주의력은 언제나 부주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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