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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충" "쿵쾅이" "틀딱"… 세종도 울고 갈 혐오 표현에 멍드는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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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09 07:00:00 수정 : 2018-10-09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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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혐오표현→대중화→차별확산 연쇄고리에 갖힌 한글 한글이 ‘혐오’로 물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에서 남녀, 지역, 세대, 정치 등 갈등이 반복되면서 한글 단어에 혐오의 정서가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베, 워마드 등 극단적인 성향을 띄는 커뮤니티들은 이런 신조어들을 모아 자체 용어집까지 만들 정도로 자신들의 혐오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언어에 담긴 혐오는 온라인을 타고 대중화되어 빠른 속도로 확산한다. 혐오의 언어는 사회 문화 전반으로 확산해 불편함과 함께 다른 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나온다.

◆일베들의 혐오 표현...‘민주화’ ‘홍어’ ‘운지’ ‘∼충’

개인을 비난하는 욕설과 달리 사회 소수자를 비난하는 혐오 표현들은 일부 급진적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이트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다.

이들은 기존 언어에 혐오의 정서를 담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일베에서 사용되는 ‘민주화’란 표현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과정’이라는 기존의 의미가 아니다. 일베 민주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따온 것으로 커뮤니티의 우파 정치적 성향과 맞물려 “따돌리고 괴롭힌다” “반대한다” 등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베에서는 ‘홍어’, ‘전라도’ 등의 단어들도 기존의미와 달리 지역비하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진보좌파들이 호남에 많다는 이유에서다.

일베에서는 고인에 대한 비하도 단어를 통해 이뤄진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하하며 ‘운지’라는 단어를 “몸을 던진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또 경상도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말끝에 “~노”를 붙이는 사투리를 사용한다. 코알라와 노 전 대통령을 합성한 사진을 두고 ‘노알라’라는 신조어를 만드는 가하면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 단어 끝에 벌레를 상징하는 “~충(蟲)”을 붙이기도 한다.

◆“한남충” “재기하라”...일베 ‘미러링’ 메갈, 워마드도 혐오 표현

혐오 표현은 또 다른 혐오 표현으로 이어진다. 일베에서 ‘김치녀’, ‘된장녀’ 등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등장하자 여성들은 메갈리아, 워마드 등 커뮤니티에서 남성을 비하하는 “한남충”, “재기하라”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표현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용어집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로 확산했고 ‘한남’, ‘한녀’ 등 일부 표현은 점차 대중화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나 일상에서도 어원을 떠나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7월 서울 혜화역에서 열린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 연합뉴스
◆혐오표현→대중화→차별확산 ‘불편한 혐오고리’

혐오표현은 온라인상을 떠돌며 빠르게 대중화하기 시작한다. 이들 혐오표현이 위험한 이유는 표현 내에 존재하는 혐오의 감정이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로 확산된다는 데 있다. 과거 미국의 노예제도나 독일의 나치정권의 성장 과정에서도 혐오표현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혐오표현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거나 특정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행위를 정당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 6일 5차까지 진행된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혜화역 시위)’ 과정에서도 혐오표현이 등장해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이들은 여성차별을 주장하며 “한남충” “재기하라” 등 혐오구호들을 거침없이 외쳤다. 지난 7월 3차 시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문재인 재기해”라고 외친 한편 한 참석자가 문 대통령의 ‘문’을 뒤집어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곰’이란 단어를 얼굴에 붙이고 등장해 사회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확산하던 혐오표현들이 현실로 표출됐다는 분석이다.

대중은 이런 혐오표현들에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취업포털 알바몬과 잡코리아가 지난 5일 20세 이상 성인 2298명을 대상으로 ‘신조어’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충(蟲)(53.3%)”, “쿵쾅이, 틀딱 등 특정 대상이나 지역 비하성 신조어(42.6%)”, “김치녀, 한남충 등 특정성별을 비하하는 신조어(37.2%) 등에 대해 ‘듣거나 읽기에 불편하고 거슬린다’고 답했다.

◆직접 규제 방안 없어...전문가 “법적 규제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도 필요”

국내에는 혐오표현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령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혐오표현의 내용에 따라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여 처벌하는 경우가 있다. 혐오사이트 폐쇄나 인터넷 행정심의 등을 통한 제재도 논의되고 있지만 실행되기란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청와대 김형연 법무비서관은 일베를 폐쇄해달라는 청원이 20만명을 넘자 지난 3월 공식답변을 내놨다. 그는 청와대 홈페이지 라이브 방송을 통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해당 웹사이트 전체 게시글 가운데 불법 정보의 비중이 전체게시물 중 70%에 달하면 사이트 폐쇄 기준이 될 수 있다”면서도 “일베의 불법 정보 게시글 비중이 사이트 폐쇄 기준에 이르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5년간 차별이나 비하 내용으로 심의 후 삭제 등 조치된 게시물 현황을 보면 2013년 이후 제재 건수가 가장 많은 사이트는 일베였다. 2013년 이후 2위를 기록한 2016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1위 제재 대상에 올랐다. 그럼에도 커뮤니티라는 특성상 불법 정보 게시글이 70%를 넘긴다는 기준에 걸리기란 쉽지 않을 거란 예측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일부 불법 성인사이트와 불법 웹툰 사이트만이 불법 정보 기준에 따라 폐쇄조치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법적 규제뿐 아니라 교육, 문화, 토론 등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올리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혐오표현을 분석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보고서(2012)’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형사규제, 민사규제, 차별시정 등의 금지하는 방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형성적, 촉진적, 사전예방적 규제로 확장된다”며 “혐오표현의 금지, 처벌을 통한 문제해결이 사후적, 소극적, 부정적인 조치라고 한다면 형성적인 규제는 혐오표현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여건을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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