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3년 안용복 납치사건 이후 일본 막부가 내린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조일(朝日) 국경조약으로 볼 수 있을까. 11일 ‘2018 독도국제포럼’의 토론회에 참가한 패널들과 발제자들은 각자가 해석한 국제법의 관점에서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해석한 관점을 제시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2018 독도국제포럼’이 열린 가운데 독도 영토 주권 공고화를 주제로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중앙대 제성호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조일 국경조약 체제와 독도 영유권’을 발표한 계명대 이성한 교수(일본학과)에게 일본의 울릉도 도해금지령은 국경조약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펼쳤다. 이 교수는 1693년 울릉도에서 고기를 잡으러 나간 안용복이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된 후 1696년 일본 막부가 공식 작성한 울릉도 도해금지령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논의 결과가 국경조약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제 교수는 “영토문제는 영유권과 국경문제로 나뉜다. 섬의 귀속 여부에 따른 합의인 것이지 명시적으로 일본이 울릉도를 조선 땅이라고 확인한 것이 아니다”며 “국경은 선의 개념이며 일본과 조선 사이에 국경으로 어디까지를 설정하고 영해를 어떻게 규정했다는 합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두 교수의 논박이 이어지자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당시 조선과 일본 막부가 외교문서를 3차례 교환하고 해당 원본을 일본에서 확인했다”며 “일본 어부가 울릉도에 가서 고기잡이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안용복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영토문제를 공론화시켜 문서까지 남게 된 것은 큰 공”이라고 덧붙였다.
일본과는 울릉도 경계를, 청과는 북한산 경계비를 세워 조선의 국경 문제를 주변국과 다룬 조선 숙종시대를 근대화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윤호 중국 칭화대 연구원은 ‘중국 및 동아시아의 영토 관념과 한반도 그리고 독도’란 주제를 발표한 김준 중국 절강공상대 한국학연구소장에게 “숙종시대 조선이 청·일본과 벌인 영유권 쟁의는 영토와 국민에 대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숙종시대 조선이 근대국가로서 입지를 확립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질의했다. 김 소장은 “한국사 전공자가 아니라서 확답할 수 없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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