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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 2주 안전교육’…24살 청년의 죽음에 깔린 '위험의 외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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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13 07:00:00 수정 : 2018-12-13 11: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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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용균씨 죽음의 고리 "위험 내모는 발전소, 짜내는 협력사, 안전교육은 사인만" “성실하고 정열적으로 일했다. 요령조차 못 피우던 아이였는데....”

충남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운전원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24)씨의 동료들은 1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이같이 회상했다. 이들에 따르면 외동아들이었던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인 부모를 돕기 위해 일찍 사회 현장에 뛰어들었다. 첫 직장이다 보니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일을 했다고 한다. 김씨의 부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철저하게 조사해 달라”고 애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전날 새벽 홀로 발전소 설비를 점검하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2인 1조’로 일하는 안전 원칙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은 인재(人災)였다. 김씨는 사고가 나기 열흘 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올렸다. 김씨가 ‘위험의 외주화’를 경고하며 찍은 사진은 그의 마지막 모습으로 남았다.

◆ 위험의 외주화…“2인 1조 수차례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2016년 ‘2인 1조’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공 사망사건은 또 재현됐다. 이번에도 ‘2인 1조’로 일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홀로 컨베이어 벨트 점검에 나선 김씨는 오후 10시쯤 담당 과장과 통화한 후 연락이 두절됐다. 6시간이 지난 새벽 3시에야 현장을 찾은 동료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옆에 한명만 있었어도 컨베이어 벨트 운행정지 버튼을 눌러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 숨진 김용균(24)씨의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동료들이 찾아와 문상하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대표 이태성씨는 1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20년 넘게 일했지만 컨베이어 벨트 점검을 ‘2인 1조’로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수차례 요구했지만 인원 자체가 2인 1조가 될 수 없는 구조였다”라고도 토로했다.

김씨의 죽음의 중심엔 하청업체 외주화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령 인건비, 안전관리 등에 들어가는 실제 비용이 ‘100’이라면 하청업체들은 최저가 입찰을 따내기 위해 ‘88’ 정도 수준까지 비용을 낮춘 다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 점검은 과거 정규직이 2인 1조로 하던 업무였지만 외주화 과정에서 1명에게 떠맡겨졌다. 심지어 업무를 맡은 김씨는 지난 9월 입사한 3개월 차 직원이었다. 이씨는 “최저가 입찰로 인건비, 안전관리비 등이 이미 정해져서 오기 때문에 아무리 인력 충원을 요청해도 무리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충남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가 12일 오후 서부발전 본사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 발전소 사망사고 97%가 비정규직…위험 업무 부추기지만 책임 피하는 외주화의 ‘고리’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노조가 지난 4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5년간 발생한 발전소 안전사고는 346건으로 이중 337건(97%)에서 비정규직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사망한 노동자 40명 중 37명(92%)은 비정규직이었다. 이처럼 발전소 본사는 위험한 업무를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했고 작업 관리라는 명분으로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박태환 발전산업노조위원장은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이나 용역업체 관리자를 통해 제대로 빨리 끝내라는 식의 업무 압박을 받고 있다”며 “그렇지 못하면 벌점을 통해 다음 계약에 불이익을 받게 되니 안전을 도외시하더라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 한국서부발전에서는 원청 관리자가 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에게 ‘안전작업허가서’도 없이 업무를 재촉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 숨진 故 김용균씨가 지난 1일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찍은 사진.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대표 이태성씨 제공.
이로 인해 사고가 나면 책임은 오롯이 하청업체에게 주어졌다. 하청업체는 사고로 인해 계약 연장에 실패할 것을 고려해 정규직이 아닌 1~2년 단위로 계약하는 비정규직 위주로 고용하고 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하청업체가 사고를 일으키거나 바뀌어도 비정규직 직원은 그대로 일을 한다”며 “관리하는 하청업체만 바뀌다보니 사실상 변하는 건 없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이처럼 1~2년 단위로 고용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업무에 대한 숙련도가 낮을 수밖에 없지만 안전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2개월가량 산업안전교육을 받는 정규직과 달리 실제 김씨는 2주 가량의 교육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대표 이태성씨는 “김씨는 2주간 격일로 사인정도 하는 형식적인 안전교육을 받았다”며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 노동계 “공공기관 직접고용 해야”…국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촉구

노동계는 김씨와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공공기관 직접고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위험한 업무의 책임을 하청업체에게 돌릴 게 아니라 원청이 직접고용을 통해 책임지고 예방대책을 마련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조선소, 발전소, 건설현장 곳곳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다”며 “(김씨 사고도) 공공기관 효율화란 이름으로 자행한 인력감축, 외주화 구조조정이 부른 참사”라고 지적하며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씨 유족과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인 ‘故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칭)’도 12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는 1년 6개월 전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발전사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해 왔다”며 “대통령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기만 했어도 이와 같은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위원회는 이어 “우리가 (정규직 전환을 직접고용으로 하라는)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의 뜻을 실천하겠다”며 “정부가 바뀌어도 되풀이되는 청년 하청노동자의 죽음,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바로잡자는 입법 움직임도 일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이날 “관계당국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2인 1조의 원칙을 어기고 입사 3개월 차의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에게 컨베이어 점검 작업을 홀로 시킨 경위와 안전관리 소홀 등 위법한 사항은 없었는지에 대해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은 파견용역 노동자의 안전과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해 둔 상태”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도 이날 “안전관리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태안화력발전소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조속히 정규직화 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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