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렸을 때 집 나와서 잘 살고 있어. 아르바이트 하면서 검정고시 준비하면 돼. 일단 집부터 나와봐.” 몇 년 전 여름 A양은 그렇게 집을 나왔다. 고등학생 때였다. 늘 술을 마시는 엄마와 자주 다퉜다. 랜덤채팅앱에서 우연히 알게 된 ‘그 사람’을 만났다. 30대 남성인 그는 “우리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라”, “검정고시 공부를 지원해주겠다”고 거듭 설득했다. 두려운 마음이 컸지만 A양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수렁에 빠졌다.
“우선 나와 관련한 것부터 다 지우자.”
그 남자는 만나자마자 ‘흔적’부터 없앴다. 통화 내역은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목록과 친구 목록도 삭제하게 했다. 그 남자 집에는 A양 또래가 살고 있었다. 자신을 ‘사촌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 남자는 생필품을, 사촌동생은 갈아 입을 옷을 A양에게 사줬다. 자연히 마음의 짐이 커져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무렵 사촌동생이 ‘조건 만남’으로 생활비를 벌어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남자가 채팅앱으로 남성들을 유인하면 사촌동생이 나가 20만원을 받아왔다.
그 남자는 얼마 가지 않아 A양에게도 조건 만남을 제안했다. 주저하는 A양에게 “동생 단골 손님들이니까 괜찮을 것”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찾아가 혼내주겠다”고 속삭였다. 직접 만들었다며 ‘성병에 걸리지 않는 법’ 매뉴얼도 보여줬다. “미래를 생각해. 3년만 돈도 벌고 검정고시 준비하자. 돈 모아 당당히 집에 들어가야지”라는 말에 A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고민을 터놓던 ‘사촌동생’은 얼마 뒤 떠났다. “나 실은 그 사람과 친척 아니야.” 사촌동생은 본인도 A양과 비슷한 처지라고 털어놨다. A양이 따지자 그 남자는 사촌동생에게 화부터 냈다. “당신 경찰에 신고할 거다” “흥신소를 통해 찾아내 반드시 가만두지 않겠다” 등 고성이 오갔고 사촌동생은 사라졌다. 이때부터 만남에 대한 ‘의무’가 커졌다. “너 때문에 사촌동생이 나갔으니 네가 걔 몫까지 다 갚아야 한다”고 했다.
폭행과 성폭행, 가학행위가 일상이 됐다. 몸이 아파 진료를 받아도 소용없었다. 그는 이튿날 다시 ‘만남’을 강요했다.
그 남자는 성매수자와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재촉이 시작됐다. ‘경찰 조사 받으면 네가 원해서 했다고 해줘. 너는 미성년자라서 괜찮지만 난 아니잖아. 그리고 이 메시지도 지워줘.’ 그는 문자를 계속 보냈고 조사받기 전 대기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속삭였다. “게임에서 만난 걸로 하자. 우린 연인 사이잖아. 경찰이 부모님 부르려고 하면 ‘집 가면 죽을거다’라고 말해. 알았지, 그래야 너 집 안 가.”
A양은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스스로 채팅앱에 접속해 성구매자를 만났다, 그와는 연인 사이다, 그가 시킨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엄마가 이 사실을 모르길, 빨리 이 공간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그가 갖고 있는 자신의 사진, 그간의 끔찍한 폭력도 머리를 스쳤다.
결국 A양은 귀가했다. 3개월 만이었다. ‘성매매범’으로 낙인찍힌 뒤였다. 집에 돌아온 바로 그날, 그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집에 계속 있을 거야? 이제 다시 경찰에 안 걸릴 자신 있어. 나 머리 좋은 거 알잖아. 이제는 조건 같은 거 하지 말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지내자. 정말로 약속할게. 일단 집부터 나와봐….’
◆아직 끝나지 않은 A양 사건
A양은 정말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것일까. 수사기관과 법원은 자발성에 무게를 두었다.
18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A양은 지난해 7월 소년법원에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명령 등 보호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A양 변호인 측이 진정서와 탄원서를 제출하며 “성매매 강요·알선 피해자이고 수차례 성폭력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양은 조사 과정에서 시민단체들 도움을 받아 아동·청소년 성매매 알선, 강요 등 혐의로 그를 고소했다. 그와 A양 두 사건의 병합을 요청했지만 결국 따로 송치됐다. ‘최초 진술은 강요에 의한 거짓말’이란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교화가 필요한 대상 청소년’이 된 A양은 성매매 남성들과 같은 공간에서 성폭력 치료 강의를 들어야 했다.
이후 그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당한 여자 청소년 등 4명이 더 나타나며 비로소 A양의 ‘진실성’이 인정됐다. 지난 5월 1심 법원은 A양 등에 대한 성매매 알선·강요 혐의를 인정해 그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보호처분을 받은 대상 청소년이었던 A양이 다른 법정에선 성범죄를 당한 피해 청소년이 된 셈이다. 하나의 사건, 같은 진술이었지만 수사기관과 법원 판단에 따라 지위가 달라졌다.
박숙란 십대여성인권센터 고문변호사는 “이 사건은 청소년 성착취를 ‘자발이냐, 강제냐’ 둘로 나누려는 현행법의 모순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며 “내년 초 이 사건 피해자를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관련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사회부=박현준·남정훈·권구성·이창수·김주영·김청윤 기자 winterock@segye.com
영상팀=서재민·이우주 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 공공의창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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