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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아동수출’의 책임 홀트에 떠넘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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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0 09:53:08 수정 : 2019-02-10 13: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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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미국으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이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서울서부지법으로 이송됐다.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이 제기됐지만 법원이 홀트아동복지회의 소재지인 서울 마포구를 관할하는 서울서부지법으로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

◆해외입양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홀트의 책임?

10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아담 크랩서(43)를 대리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30일 서울서부지법에 이송됐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서울중앙지법에 관할이 없기 때문에 관할 위반으로 이송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민변 등에 따르면 크랩서는 1979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후 두 차례 입양과 파양을 당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수준의 아동학대를 당했고, 시민권이 없었던 탓에 2016년 11월 한국으로 강제추방됐다. 그는 미국에서 아내와 자녀 셋을 뒀지만 분리된 채로 언어와 문화가 모두 다른 모국에서 지내고 있다.

소송의 주된 이유는 홀트아동복지회가 크랩서의 입양을 진행하던 당시에 친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기아(유기 아동)’로 허위 호적을 만들어 보냈고, 이에 대해 정부가 어떠한 관리·감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은 서울중앙지법이 관할한다. 관할이 서울서부지법으로 이송된 것을 통해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는 의중이 깔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변은 법원의 이송 결정에 대해 지난 1일 항고했다.

◆해외입양 제도 만들고 내보내기 급급했던 정부

그렇다면 정부의 책임은 실제로 어느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정부의 입양정책 및 관련 법제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은 6·25전쟁 이후 발생한 수많은 전쟁고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뒷받침할 여력이 되지 않았던 탓에 1950년대에는 제도의 근거도 없이 미국 주도로 진행됐다. 급증하는 혼혈아 문제로 골치가 아프던 정부 입장에서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러나 이는 한 국가의 법제를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 두 국가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문제였던 만큼 본격적인 해외입양의 확대를 위해 관련 해리 홀트 등 미국인들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관련 입법을 위한 각종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난민법과 난민구호법 등의 정비를 통해 전쟁고아에 대한 입국 및 입양에 대한 절차가 완화됐다. 국내에서는 고아입양특례법(1961년)이 제정되는 등 각종 법제가 마련됐다.

이후 미국 등에서 입양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해외입양을 전문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홀트아동복지회와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의 민간입양기관이 생겨났고 정부의 무관심 속에 관련 사회 인프라도 민간 중심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1960년대 매년 수백명대였던 해외입양은 1969년 1190명으로 올라선 뒤 매년 수천 명으로 폭증했다.

‘전쟁 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혹은 ‘(해외로) 안 보내면 어차피 죽을 거니까’ 등의 이유로 해외입양이 증가했다면 경제발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1970년대부터는 줄어들어야 했던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민간 주도로 거침없이 확대된 해외입양은 1985년 한 해에만 8837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1960년대에는 6166명이던 해외입양아는 1970년대 4만5035명, 1980년대 6만6511명으로 늘어나기만 했다.

이와 같은 이례적인 대규모 해외입양에 대해 국제 여론이 좌시했을 리 없다. 미국 내는 물론 유럽 등에서 ‘아동수출’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거셌고, 이를 이용한 북한의 대남 비난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85년부터 국외입양을 전면 중단하겠다’며 국내입양 활성화를 주창하는 한편 국외입양 쿼터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외입양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비난이 더욱 커짐에 따라 정부는 다시 한 번 ‘1996년부터 국외입양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이행되지 못했다. 1990년대에도 2만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해외입양된 이유였다. 1950년대부터 지난해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동은 정부 공식통계상 17만명에 육박한다. 입양기관의 내부 자료 및 국제 학계 등의 추산 상으로는 20만을 훨씬 상회한다.

◆‘아동수출’ 전매제로 운영한 정부, 책임은 ‘나 몰라라’

정부가 쿼터제, 입양기관 허가제 등을 꺼내 든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법제를 운용한 차원이 아니라 해외입양을 확대하기 위해 상당히 구체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통계수치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에 따르면 2004∼2015년 12년간 해외입양 10대 송출국을 뽑은 결과 한국이 1만4218명으로 7위를 차지했다. 1위 중국(8만1650명)과 2위 러시아(5만200명)를 제외한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콜롬비아, 우크라이나, 베트남, 아이티 등이 모두 개발도상국인 터라 ‘한국의 7위’가 유독 도드라진다.

홀트아동복지회가 1956년 12월 해외입양을 위해 띄운 미국행 전세기 내부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유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라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지만, 국제학계 등 국제사회에서는 한국 정부가 입양에 대한 통계를 오래전부터 정확히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더욱 놀라움을 표한다. 복지제도 등 각종 사회 인프라와 법제가 미비한 상황에서 해외입양이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만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초기부터 입양에 대한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입양 통계수치가 나왔다는 것은 정부가 민간입양기관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왔음을 방증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외입양을 할 수 있는 국내의 3대 입양기관별로 정부에 허가받은 관할 국가가 다르다. 2017년 기준으로 홀트아동복지회의 경우 미국과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룩셈부르크에 해외입양을 보낼 수 있다. 대한사회복지회는 미국과 스웨덴 캐나다, 이탈리아를, 동방사회복지회는 미국과 호주를 각각 관할하고 있다.

이는 국내입양 또한 마찬가지이다. 복지부의 입양실무매뉴얼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홀트아동복지회(본부 포함 총 9개 지부)와 대한사회복지회(본부 포함 총 6개 지부), 동방사회복지회(본부 포함 총 6개 지부), 성가정입양원(서울 성북구), 한국사회봉사회(서울 도봉구)가 복지부 허가로 입양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밖에 지방자치단체 허가로 국내입양을 할 수 있는 입양기관은 광주영아일시보호소(광주)와 자비아동입양위탁소(강원 강릉), 꽃동네 천사의 집(충북 음성), 한빛국내입양상담소(충남 홍성), 홍익아동복지센터(제주)가 있다.

해외입양을 정부 등 공공 주도로 진행하도록 제도를 개편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도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귀를 닫고 있다. 입양가정에 대한 검증과 각종 서류 작업은 물론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민간 입양기관이 대부분의 단계를 대리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해외입양 아동의 안전과 권리보호를 강화하겠다며 2013년 5월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서명했지만 6년이 지난 올해에도 비준은 ‘감감무소식’이다.

입양아가 학대로 사망하는 등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2011년 입양특례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됐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정부의 책임보다는 입양기관의 절차만을 명시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몇몇 요건에 대해 입양기관을 ‘감독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입양기관의 의무와 행해야 하는 절차에 대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법원까지 거치는 절차가 마련됐음에도 여전히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크랩서 등 원고 측이 과거의 부실한 정보를 토대로 소송에 임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현행법상으로도 정부의 책임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허술한 해외입양으로 인한 고통은 누구의 책임?

고국에서 5년간 생모를 찾으려다 고독사한 노르웨이 국적 얀 소르코크씨의 여권. 그의 여권에는 출생지가 ‘1974년 1월18일 대한민국’이라고 적혀 있다.
김해=연합뉴스
과거에는 해외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원활한, 즉 절차가 매우 간소화된 입양제도를 통해 많은 아이를 보내기만 급급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이 성인이 돼 모국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노르웨이로 입양됐다가 한국에 돌아와 5년간 지내던 중 2017년 말 경남 김해의 한 고시원에서 고독사한 얀 소르코크(사망 당시 45세·한국 이름 채성우) 등 여러 나라에서 뿌리를 찾기 위해 연간 수천 명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크랩서가 추방을 당한 것은 미국에서의 절도 등 경범죄 경력도 있지만 맨 처음 미국으로 들어오던 당시의 입국 정보가 허위라는 것도 결정적이었다. 기아가 아닌데 허위로 기아로 기재됐다는 부분이다. 크랩서와 같이 미국에서 추방을 당하는 해외입양인의 사례가 늘고 있지만 정부는 사례 관리하는 몇 명에 대해서만 긴급복지 지원 차원에서 관리할 뿐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크랩서의 소송이 서울서부지법으로 이송된 것을 두고도 입양인 사회의 분노가 감지되고 있다. 해외입양인 A(41)씨는 “한국 정부가 해외로 입양 보낸 뒤 사후관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모자라, 과거의 뿌리를 찾겠다며 직장과 가족 등 현재의 삶을 모두 포기하다시피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수천, 수만의 해외입양인의 고통까지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 대해 AP의 단독보도가 각국에 확산되는 등 해외 언론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해외 각국의 입양인 커뮤니티는 물론 국내에 거주 중인 입양인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물론 입양기관을 상대로 한 해외입양인의 역사상 첫 소송인 만큼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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