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대 중반 이후 한반도 주변 해역 수호를 위한 해군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2000년대부터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3척과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6척으로 원양 작전을 진행했던 해군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적용한 차세대 첨단함정 확보를 위해 지난 2월 3억원 규모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공식적으로는 충무공이순신급(KD-2, 4400t급) 후속 함정이지만 개념상으로는 최첨단 기술이 대거 투입돼 ‘꿈의 함정’이라 불리는 미 해군의 줌왈트급 구축함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나온다.
◆무인체계·4차 산업혁명 신기술 적용
현재 해군의 원양작전을 담당하는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은 2003~2006년 6척이 취역했다. 환태평양 군사훈련인 림팩(RIMPAC)과 아덴만 여명작전, 리비아 및 예멘 교민 철수 등 해외에서의 군사행동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거듭된 해외 파병으로 인한 혹사와 군사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후속 함정 확보 필요성이 제기됐다.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의 성능개량 사업도 거론되지만, 성능개량이 이뤄져도 2030년대 후반부터는 차세대 함정을 전력화해야 한다. 함정 건조와 전력화에 10∼20년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지금부터 검토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이 지난 2월 발주한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 가능성 검토’ 연구용역 제안요청서는 해군의 미래 함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해군은 차세대 첨단함정에 무인체계와 4차 산업혁명 기술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용 가능한 공중과 수상, 수중 무인체계를 탑재하고, 무인체계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데 필요한 통합 무인체계 상황실 구축도 검토대상에 포함된다. 미 해군 연안전투함(LCS)과 줌왈트급 구축함이 MQ-8 파이어 스카우트(Fire Scout) 무인헬기를 탑재하는 등 무인체계를 함정에서 운용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해상 감시 등에 사용할 무인수상정 개발이 진행중인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증강현실(VR),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적용 여부와 확보 방안도 검토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레이더를 비롯한 감시장비들이 수집한 적 함정이나 항공기, 미사일 위협 정보를 융합, 분석해 지휘관에게 실시간 제공하는 차세대 네트워크 기반 전투체계의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다. 사물인터넷은 로봇청소기처럼 함정 내 청소를 스스로 진행하는 등의 작업에서 적용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전기식 추진체계 적용을 명시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해군은 미국 GE나 영국 롤스로이스가 제작한 가스터빈 엔진을 함정에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적 잠수함 음파탐지기에 탐지되지 않도록 엔진의 소음을 낮추고, 레이저 무기와 레일건 등 고(高)에너지 무기 탑재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함정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전기식 추진체계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실제로 터키와 중국은 함정 탑재 레일건을 개발해 시험을 진행중이며, 레이저 무기를 함정에 탑재했던 미국도 레일건 실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제안요청서에 거론된 기술 중 일부는 국내에서 개발 필요성이 거론되거나 연구과제에 반영된 상태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발간한 ‘18~32 핵심기술기획서’에 따르면, 엔진에서 생산된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필요한 수상함용 고출력 전기추진체계, 음향 및 적외선 저감, 전투손상통제 자동화 기술은 연구과제에 일부 반영됐다. 반면 다양한 전자 안테나와 레이더를 한데 묶은 통합 마스트 설계와 레이더 피탐지면적(RCS) 감소 기술은 연구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에 수백개의 미사일과 항공기를 탐지, 추적하는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장거리 요격미사일, 순항미사일 등이 더해지면, 강력한 무장과 뛰어난 감시장비, 높은 수준의 스텔스 성능을 갖춘 미 해군이 줌왈트급 구축함과 유사한 개념의 함정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변수는 높은 비용…‘플랜B’ 가능성도
문제는 비용이다.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의 척당 건조비용은 1조원. 첨단 기술이 대거 투입될 차세대 첨단함정은 연구개발과 건조과정에서 세종대왕급보다 높은 비용이 소요될 확률이 높다. 건조비용이 치솟으면 도입 규모는 줄어들게 된다. 줌월트급도 당초 32척을 건조할 예정이었으나 척당 건조비용이 43억 달러(4조 8800억원)까지 상승하면서 3척으로 축소됐다.
해군도 이같은 문제점을 의식, 연구용역 입찰제안서에 저가형 구축함에 대한 검토를 함께 명시했다.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해군이 요구한 저가형 구축함에는 건조 및 운용비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함 내 자동화 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일부 전자장비 사양을 낮춰 운영유지비를 절감하는 방안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전기식 추진체계 대신 가스터빈이나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것도 거론된다.
외국의 경우 첨단기술을 적용하면서 비용절감을 강조하는 개념을 반영한 차세대 함정이 등장하고 있다.
영국 해군이 구상중인 31형 구축함은 냉전 시절 러시아 잠수함 추적에 초점을 맞춘 23형 구축함을 대체할 최신 함정이다. 8000t급 함정인 26형 구축함이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 호위를 맡게 되면서 발생할 해상작전 공백을 메울 31형 구축함은 잠수함 추적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양한 해상작전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추구한다.
영국은 31형 구축함의 척당 건조비를 3억2700만달러(3712억원)로 확정하고 승무원을 80명 수준으로 낮춰 비용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임무에 따라 서로 다른 장비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정해 미 해군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합동작전 효율성을 높였다.
덴마크 해군이 3척을 운용중인 이버 후와이츠필트(Iver Huitfeldt, 6600t급)급 구축함은 한국 해군 차세대 첨단함정의 ‘플랜B’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버 후와이츠필트급 구축함은 덴마크 해군이 기존에 운용중인 선체와 무장 등을 조합해 비용 절감을 추구했다. 선체는 압살론급 지원함을 활용했고, 무장은 닐스 유엘급 코르벳함에 탑재됐던 것들을 일부 사용했다. 헬기 탑재 규모를 줄이고 저렴한 디젤엔진을 탑재하는 등 비용 상승 억제를 적극 시도했다. 그 결과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과 유사한 아파르(APAR) 다기능위상배열레이더와 스마트-L 장거리 레이더, SM-2 함대공미사일 등을 장착하고도 척당 가격을 3억2500만달러(약 3689억원)로 낮출 수 있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해양환경은 갈등과 충돌 위험이 높아지는 상태다. 중국은 항공모함과 구축함, 상륙함 등 해군 함정들을 찍어내다시피 하면서 해군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일본은 F-35B 수직 이착륙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면서 항공모함 보유에 바짝 다가서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도 해군력 증강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해군은 올해 말 연구용역을 통해 확보할 차세대 첨단함정 도면과 모형, 외국 사례 등을 토대로 차세대 함정 건조 관련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여 해군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