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배우 이덕화(67)는 최근 후배 연기자들과 함께 서울 홍대를 찾았다. ‘젊음의 거리’라고 불리는 홍대로 간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했다. 10∼20대 스타일로 옷을 입어보고, VR(가상현실)를 체험했다.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기)와 ‘혼밥’(혼자 밥 먹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덕화가 들고 있던 셀프 카메라에 담겼다. 지난달 5일 방송된 KBS2 ‘덕화TV’ 2회의 이야기다. 이덕화는 ‘덕화TV’를 통해 1인 방송 크리에이터에 도전 중이다. 그가 홍대에 갈 때 후배 연기자 손병호(57), 김하균(60)도 함께했다. 평균 나이 60세가 넘는 이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문화’를 경험했다. 이들이 겪은 ‘젊은 문화’는 주로 ‘나홀로 문화’가 차지했다. 여기에 이덕화가 직접 촬영한 ‘1인 방송’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이날 방송은 ‘나홀로 문화’의 총집합이었다.
최근 대중문화는 ‘나홀로 문화’를 전면으로 내세운 프로그램을 속속 내보내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 TV 방송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나홀로 문화’를 주로 다룬다. 단순히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영상물을 제작하는 방식도 ‘나홀로’ 하고 있다. 또한 이들 매체는 중장년층을 전면에 내세워 ‘나홀로 문화’를 적극 즐기는 모습을 담고 있다. 앞서 ‘나홀로 문화’는 젊은 사람들만 향유하는 것으로 여겨져, 젊은 연예인들을 주인공으로 주로 발탁했다.
◆TV 속 ‘나홀로 문화’
방송가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나홀로 문화’를 다뤘다. 특히 예능계가 가장 빨랐다. 예능계는 2012년부터 ‘관찰예능’을 내보냈다. ‘관찰예능’은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다 보니 관찰예능 대부분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다뤘다. 이렇게 공개된 연예인들의 삶은 겉모습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기 때문에 열린 공간에서 취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혼자 하는, 또는 갇힌 공간에서 하는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플라모델을 만들거나 혼자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오늘날 ‘나홀로 문화’로 불리는 취미들이 바로 그것이다. 2013년 3월 방송을 시작한 MBC 대표 관찰예능 ‘나 혼자 산다’를 비롯해 SBS ‘미운 우리 새끼’, KBS2 ‘살림하는 남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관찰예능이지만 스타들의 사생활, 혼자 하는 취미 활동을 주로 보여줬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뤄졌던 ‘나홀로 문화’는 안방극장으로 영역을 넓힌다. ‘혼술’과 ‘혼밥’이란 용어가 친숙해지고, 두 가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 많아진 2016년 tvN은 ‘혼술남녀’라는 드라마를 방송했다. 드라마는 서로 다른 이유로 ‘혼술’하는 노량진 강사들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제목에서처럼 ‘혼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매회 드라마 도입부에 등장인물의 혼술 장면을 방영했다. 드라마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방송을 보면서 혼술을 하는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게 유행했다. 또한 드라마 소재로도 ‘혼술’과 ‘혼밥’이 자주 사용됐다.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KBS2 ‘쌈, 마이웨이’ 등 젊은 배우들이 주연으로 등장한 드라마에서는 더더욱 많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혼여’(혼자 여행 떠나기)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지난 2월21일 방송을 시작한 JTBC ‘트래블러’다. 트래블러는 배우 류준열과 이제훈의 쿠바 여행기다. 첫 회는 혼자 쿠바에 간 류준열을 다뤘다. 이제훈은 한 주 뒤인 2월28일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같이 여행을 떠났지만,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이제훈은 기찻길이나 골목길을 걷는 걸 선택한다. 반면 류준열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현지에서는 ‘혼여’를 하는 것이다.
또한 중장년층이 ‘나홀로 문화’를 즐기는 모습들 다루는 프로그램도 속속 늘고 있다. KBS2 ‘덕화TV’ 등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드라마 등에서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나홀로 문화’가 방송가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나홀로 문화’
‘나홀로 문화’는 영화 속에도 종종 등장한다. 지난해 개봉한 스릴러 영화 ‘도어락’이 대표적이다. ‘도어락’은 평범한 직장인인 경민(공효진)이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법한 불안과 공포를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소공녀’는 극장판 ‘나 혼자 산다’다. 주인공 미소(이솜)는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이다란 의미의 You Only Live Once 앞 글자를 딴 용어)족이다. 그는 일당 4만5000원의 가사 도우미로 일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매 순간 삶을 즐긴다. 세태를 잘 담은 이 영화는 젊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5만9110명의 관객을 동원해 지난해 국내 다양성 영화 박스 오피스 3위를 기록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도 친구들이 곁에 있기에 혼자는 아니지만 고향 집에서 홀로 지내며 자연과 함께하는 혜원(김태리)의 일상을 통해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 준다.
일본에도 ‘나홀로 문화’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있다. ‘심야식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심야식당’은 일본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2009년에 일본에서 드라마로 먼저 방영됐다. 이후 시즌을 거듭하면서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는 2015년 6월 ‘심야식당’과 2017년 6월 ‘심야식당2’로 국내에 개봉했다. 영화와 드라마는 도쿄 번화가 뒷골목 ‘심야식당’을 지키는 마스터와 그의 요리, 그리고 단골들 사이의 끈끈한 정을 다룬다. 심야에 운영하는 식당이 배경이다 보니 대부분 ‘혼술’과 ‘혼밥’을 하는 손님을 주로 다룬다. 국내에서는 ‘심야식당’의 인기에 비슷한 콘셉트로 SBS가 2015년 ‘심야식당’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바 있다.
또한 영화계에서 ‘나홀로 문화’는 독립영화의 작업 방식으로 이미 흔하다. 지난 4일 개봉한 ‘한강에게’의 박근영 감독은 배우들을 제외하고 온전히 혼자서 작업했다. 그는 시간적 제약으로부터의 자유, 촬영장의 몰입도와 집중도를 1인 영화의 장점으로 꼽는다. 같은 날 개봉한 ‘오늘도 평화로운’의 백승기 감독도 각본과 기획, 제작, 촬영, 편집을 직접 맡았다. 지난해 개봉한 ‘다영씨’의 고봉수 감독과 ‘춘천, 춘천’의 장우진 감독도 주된 작업을 혼자서 해냈다. 국내 독립영화 전문 제작·배급사인 인디스토리 관계자는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영화에서 나홀로 작업 방식이 흔한 건 제작비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라면서도 “(‘나홀로 문화’ 유행과 맞물려) 최근 몇 년간 대부분 작업을 혼자서 하는 감독들이 좀 더 두드러지고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복진·박진영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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