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토론이 사라지고 고성과 드잡이, 육탄 대결이 난무하는 ‘동물 국회’가 25일 재현됐다. 선거제 개편·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을 상정하려는 여야 4당과 이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강대강으로 맞서면서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국회는 이날 오전부터 상대의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이에 ‘저지선’을 우회로로 돌파하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팩스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오신환 의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하는 사·보임계를 국회에 제출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의사과에 집결해 이들을 뚫고 물리적으로 사·보임 신청서를 제출하는 게 불가능해서다. 사·보임 신청서 제출은 ‘인편이나 정보통신망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국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 의장은 오 의원의 사·보임 신청서가 팩스로 제출된 지 약 1시간30분 만에 이를 허가했다.
오전 9시쯤 정갑윤·민경욱·백승주·이은재 등 한국당 의원 10여명은 국회회관의 채 의원실을 몰려가 채 의원의 출입을 통제하고 가로막았다. 공수처 설치법의 패스트트랙 상정을 막기 위해서는 사개특위 위원으로 보임된 채 의원의 회의장 진입을 막기 위해서다. 일부 의원들은 채 의원 사무실 문을 안쪽에서 닫아걸고 쇼파로 문을 막았다.
채 의원은 끈질긴 설득에도 한국당 의원들이 방문을 열어주지 않자 경찰에 이들을 신고했다. 채 의원은 사무실 창문 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기자들을 향해 “한국당 의원들이 오셔서 못 나가게 막고 있다”며 “과거로 회귀한 듯한 퇴행적인 모습에 굉장히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참다못한 채 의원이 창문을 뜯어서라도 탈출하겠다고 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그제야 문을 열어줬다.
채 의원은 오후 3시20분쯤 국회 방호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사개특위 법안소위가 열리는 국회 본청 운영위원장실에 도착했다. 자유한국당 김규환 의원은 채 의원 사무실에서 나온 뒤 기자들을 만나 “채 의원이 탈출한 것이 아니라 혼자서 나온 것”이라며 “사무실 안에서 한국당 의원들과 충돌은 전혀 없었고 같이 웃으면서 얘기하고 마술도 하는 분위기였다”고 멋쩍게 해명했다.
패스트트랙 상정의 ‘1차 관문’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장에서도 한국당의 무력시위가 벌어졌다.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1시쯤부터 국회 본청 245호·220호(사개특위·정개특위 회의장) 문 앞을 자신들의 몸이나 의자 등으로 막고, 출입문을 청테이프로 봉쇄하며 출입 원천차단을 시도했다. 여기엔 한국당 보좌진도 대거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4당 지도부도 패스트트랙 상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당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현재 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장 곳곳의 문을 걸어 잠근 채 불법 점거농성 중”이라며 “의원들은 오늘 여야 4당이 합의한 패스트트랙 지정이 마무리 될때까지 상황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국회에서 비상대기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부터 운영위원장실에서 사개특위 위원장인 같은 당 이상민 의원과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 백혜련 의원과 함께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와 사개특위 위원인 권은희 의원 등을 모아 공수처 설치 법안을 검토·논의했다.
안병수·이창훈 기자 r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