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과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면서 양국 간의 무역전쟁 양상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 무역분쟁은 비단 두 나라 만의 전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전 세계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졌었는데요.
이달 초까지만 해도 두 나라는 워싱턴에서 머리를 맞대고 협상에 임해 막판 타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도 이 협상이 잘 되길 바랐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는데요.
이번 무역전쟁이 지금처럼 계속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가정하에 국제통화기금(IMF)은 두 나라가 '관세 전면전'을 벌이면, 첫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중국은 1.22%포인트, 미국은 0.31%포인트, 전 세계는 0.11%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 중간재를 중국에 공급하는 나라들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IHS 마킷은 글로벌 전자제품과 유럽 제조업의 신규주문 증가세 둔화에 신음하는 아시아태평양(아태) 지역 경제가 무역전쟁 악화에 따라 성장에 더 심한 맞바람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무역전쟁에도 정부가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동남아 등지로 수출 다변화가 필요하지만 말처럼 쉽지도 않고, 금방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경제의 수출 의존을 줄이기 위해 내수 활성화가 필요한데 이 역시 간단치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큰 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을 예상한다면 마냥 손 놓고 있을 상황은 아니라는 게 중론입니다. 큰 경제위기로 비화하지 않도록 경제진단을 냉철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 악화를 패권전쟁 서막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무역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원인이 실무적 견해차 보다는 국가 주권, 위상을 둘러싼 위기감에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 최근 미중 무역전쟁을 다룬 외신 보도를 종합해보면, 미국과 중국의 통상갈등을 '투키디데스 함정'(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의 틀로 해석하는 시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요.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심화하면서 현재 초강대국과 신흥 초강대국이 서로 상대를 평가하고 공존이 가능할지를 결정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패권국과 신흥 패권국은 지난 세기 영국과 독일, 미국과 일본처럼 상대에 대한 불안과 불신, 견제 때문에 반드시 전쟁으로 가는 경로에 들어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이와 동일한 시각에서 해설했는데요.
통신은 무역협상이 결렬되기 몇 주 전부터 미국 군함이 중국의 반발 속에 영유권 분쟁이 있는 남중국해를 항행하고,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중국 차이나모바일의 미국 시장 진입을 불허하는 등 갈등이 증폭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중국은 갈등을 증폭하는 조치의 이면에 미국이 자신의 발전을 억제하고 굴기를 봉쇄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본다"며 "미국에서는 강력한 경쟁국이 성장해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가 닥칠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중 무역마찰 악화, 패권전쟁의 서막으로 보는 시각 확산
이같은 분위기에서 상호불신이 돌아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거나, 미국 정권이 교체돼도 대치가 지속할 수 있다는 일부 관측도 나오고 있는데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중국이 현재 글로벌 지배력, 위상, 부(富)를 놓고 싸우고 있다고 현상을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NYT는 "지난 1년간 이어진 미중 무역전쟁이 수십년간 지속될지도 모를 경제전쟁 초기에 일어난 소규모 전투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점점 더 많은 경계심을 노출하면서 해킹, 기술이전 강요와 같은 기술탈취 관행을 비롯 자국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산업·통상정책에 전방위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미국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하고, 중국 기술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를 차단하며 지식재산권 탈취를 단속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램프턴은 "중국과의 고통스러운 교섭이 수십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는데요.
중국 신화통신은 지난 11일 논평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해소 과정에서 '대화하면서 싸우는 것'(fighting while talking)이 협상의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美 정권 바뀌어도 미중 간 대치 지속할 수도"
이번 무역협상이 결렬된 주요 원인으로도 궁극적으로는 슈퍼파워로서 자국 입장을 관철하려는 미국의 의지와 대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중국의 자존심이 정면충돌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기술이전 강제, 지식재산권 침해, 산업 보조금 지급 등의 산업·통상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이 법률을 개정하고 이를 무역합의에 적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중국은 이를 서양과 일본에 겪은 지난 세기의 굴욕을 연상시키는 내정간섭으로 보고 있습니다.
NYT는 "중국인들은 (최고의 의사결정기관인) 전국인민대표회의의 입법 절차를 거쳐 정책을 변경하라는 조치를 포함한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요구를 주권침해이자 너무 많은 권한을 미국에 내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짙은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중국 대중들은 미국의 요구 때문에 해외 열강들에 의해 체결된 19세기 불공정 늑약의 역사를 떠올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교착상태는 실무협상에서 풀릴 문제가 아닌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담판이 주목된다고 진단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트위터를 통해 "나와 시 주석의 관계는 아직 굳건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중국 관리는 WSJ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에서는 두 정상의 직접 대화가 막다른 길목에서 탈출할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양국 정상이 다음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안팎에서는 무역협상이 타결돼도 양국 긴장관계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한 전문가는 "시진핑과 트럼프가 모종의 합의를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양국의 전략적 관계는 이미 곤경에 빠진 상태"라며 "합의가 있어도 돌아올 길은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미중 관계 단기간 내 회복 어려울 듯"
이런 가운데 미국의 대중국 관세부과로 한국의 수출도 1조원(8억7000만달러) 이상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12일 '미국의 대중국 관세 부과 영향'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비중이 38.9%로 대만 다음으로 높아 미중간 무역분쟁 확대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수출비중은 26.8%, 대미(對美) 수출비중은 12.1%입니다.
중국에 대한 직접적 효과로 중국 중간재 수요가 줄어들어 한국의 대(對)세계 수출은 0.10% 감소합니다. 간접적 효과의 경우 중국의 성장둔화에 따라 대세계 수출이 0.04% 줄어드는데요.
직간접 효과를 합치면 수출 감소분은 0.14%(8억7000만달러)에 이르게 됩니다.
무역협회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제재시 대만·한국·일본·독일 등 국가들이 대중국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이 커 수출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은 79.0%에 달합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0%,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6%에 달하고 있습니다.
◆무역협회 "韓 수출 1조원 이상 감소할 수 있다"…정부 "국내 실물경제 미치는 영향 제한적"
무협은 "미중 무역분쟁의 간접적 영향까지 감안할 경우 수출 감소분은 8.7억달러보다 더 클 수 있다"며 "미국의 대중 관세부과로 인한 관세의 직접적 영향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지연, 금융시장 불안, 유가하락과 같은 간접적 영향까지 감안할 경우 앞서 추정한 결과보다 더 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어 "미·중 무역협상의 목표가 단기적 무역 불균형 해소에 있다면 양국은 모두가 유리해지는 절충안을 선택해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패권 유지를 위해 구조적 이슈까지 해소하는 데 있을 경우 미국은 세계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중국과 '강대강' 대치로 무역분쟁은 장기화할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정부는 미국의 대(對)중 추가관세 부과가 국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미중 협상 진행 상황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적기 시장안정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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