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 사태로 기소된 유해용(사법연수원 19기·사진)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유 전 연구관은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종이에 적은 자신의 주장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사상 초유의 전·현직 법관에 대한 수사라 검찰도 고충이 있었을 테지만, 정의롭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며 “총체적 위법수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 전 연구관은 “언론에서 ‘사법농단’ 사건이라 표현하는 이번 일은 사법부 역사에 유례 없는 사건”이라며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만이 아니라, 수사 절차가 과연 적법하고 공정했는지도 낱낱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비공개 면담 조사, 별건 압수수색, 언론을 활용한 대대적 피의사실 공표, 표적수사, 과잉수사, 별건수사, 영장주의 위반” 등을 검찰 위법수사 사례로 언급했다.
그는 “판사들은 그동안 무덤덤하다가 자기 일이 되니 기본 인권이나 절차적 권리를 따진다는 언론과 국민의 비판을 뼈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15년 전부터 조서에 의한 재판 등의 폐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겪어보니 수사 실상이 이런지 몰랐다는 것을 깨쳤다”고 말했다. 또 “이번 기회에 디딤돌이 되는 판례 하나를 남기는 것이 제 운명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유 전 연구관은 본인의 혐의에 대해서도 “삶이 죽음보다 구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수사 단계에서 언론에 중대 범죄자로 찍혀 모든 삶이 불가역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만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합리적 심리를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검찰은 “표적수사, 과잉수사 등을 이야기하지만, ‘사법농단’ 수사 중 피고인의 범죄 혐의가 드러난 데다 고의로 중요 증거를 인멸한 사실이 있어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유 전 연구관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재판 검토보고서 등의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관련 증거를 파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윤종섭) 심리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 등의 첫 공판준비기일도 진행됐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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