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전격 회동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쇼’가 북한의 변화와 북핵 문제 해결의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냉전 종식을 견인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분석이 미국 조야에서 나왔다. 레이건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손잡고, 양국의 핵 군축을 끌어낸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브로맨스’를 통해 한반도의 정세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민간단체인 ‘터닝포인트 USA’ 창설자인 찰리 커크는 4일(현지시간) 뉴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건을 롤 모델로 삼아 레이건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이건이 냉전 체제 해체의 길을 열었으나 북한은 여전히 냉전의 유물로 남아 있다. 이제 트럼프가 북한을 ‘빛의 세계’로 끌어냄으로써 레이건이 남긴 유업을 완결할지도 모른다고 커크가 전망했다.
◆역사의 반복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1986년 10월 11, 12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해안가에 있는 외딴 건물 호프디하우스에서 이틀간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고르바초프가 레이건에게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군비 통제 문제를 솔직하게 논의하자”는 내용의 친서를 보냄으로써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도 친서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고 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간 레이캬비크 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두 사람이 무기 감축에 합의할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지난 2월 27,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와 김정은 간 2차 북·미 정상회담도 결렬됐다.
레이캬비크 회담 결렬 이후 핵 군축 비관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그다음 해 12월 워싱턴 DC에서 다시 만나 사거리 500∼5500㎞ 지상 발사형 중·단거리 미사일을 모두 폐기하는 것을 목표로 한 중거리핵전력 조약(INF)을 체결했다. 이 조약이 냉전 종식의 서막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커크는 “미국의 45대 트럼프 대통령이 40대 레이건 대통령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조직적이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건 모델’을 현대화해 북한에 적용하고 있다고 그가 강조했다.
◆레이건 모델
레이건 모델은 우선 ‘강한 미국’을 지향하는 것이다. 레이건은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를 살리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국제 사회에서 ‘미국 예외주의’를 실천하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걸고, 강한 미국의 재건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를 위해 감세 및 군비 증강을 핵심 국정 과제로 추진해왔다.
레이건은 옛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지만, 옛 소련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추진했다. 레이건은 ‘철의 장막’ 뒤에 있는 옛 소련 주민이 언젠가는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화염과 분노’로 대응하고,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했지만, 북한과의 대화에 나섰다. 트럼프도 북한이 곧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워싱턴 DC로 초대했듯이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김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이 성사되려면 그 전에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 트럼프가 레이건의 길을 따라가도 김정은이 고르바초프의 길을 가지 않으면 레이건·고르바초프 모델의 재현을 기대하기 어렵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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