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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들 죽음으로 삶을 들여다보다

입력 : 2019-07-06 01:00:00 수정 : 2019-07-05 19: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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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창간 1851년 이래 실었던 / 부고기사 중 169명 선별해 출간 / 이승만·DJ 등 한국인 6명도 포함 / 업적과 과오까지 가감 없이 소개
윌리엄 맥도널드/윤서연,맹윤경,유세비 등/인간희극/2만5000원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 - Book of the Dead/윌리엄 맥도널드/윤서연,맹윤경,유세비 등/인간희극/2만5000원

 

시대와 시간을 초월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신문이 1851년 9월 18일 창간호 이래 실었던 인물들의 부고 기사를 선별해 낸 책이다. 편집자는 현재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 책임자인 윌리엄 맥도널드. 책에 소개된 인물 169명의 사망 당일, 혹은 며칠 뒤에 실제 보도된 것들이다. 대부분 해당 인물의 생애에 관한 글이지만, 그 인물이 살던 사회를 전반적으로 반영한다. 사망 당시의 시점으로 돌아가 그 시대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아울러 현시대의 평가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편집자는 “부고 기사는 과거를 비추는 거대한 백미러에 비유된다. 뉴욕타임스에서도 가장 스토리텔링에 능한 기자가 작성해왔다”고 소개했다. 

 

1865년 4월 17일자 뉴욕 타임스 1면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

“위대한 인물을 잃은 미국/링컨 대통령 암살/끔찍한 범죄의 내막”

 

링컨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전한 이 기사는 신문 1면 왼쪽 상단 일부만을 차지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기사는 요란하거나 자극적이기보다는 슬픔에 잠긴 어조였다. 이후 이어지는

 

문장들 역시 엄숙하고 차분했다. 국가적 재난에 가까웠던 ‘사태’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차분한 보도 태도는, 오늘날 현대인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끔찍한 범죄의 내막은 무엇인지 아직도 정확한 건 모른다. 

 

링컨

1924년 1월 22일자에 실린 레닌 부고 기사이다.

 

“블라디미르 레닌/ 1870년 4월 22일~1924년 1월 21일/

 

모스크바—어제 저녁 6시 50분, 블라디미르 레닌이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직접 사인은 뇌출혈로 인한 호흡기마비였다. 레닌은 외가의 영향을 받아 동방 정교회를 믿으며 자랐고 원래는 교수가 되고자 했다. 교육 공무원이었던 부친은 나름 공적을 인정받아 레닌의 집안은 하급 귀족의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레닌의 성은 울리야노프였고, ‘레닌’은 필명이었다.  월터 듀란티 기자” 이어 신문 2쪽 분량의 장문 기사가 뒤따랐다. 이 기사는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확산 일로에 있던 레닌주의(공산주의)를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공산주의 이론의 ‘오류’ 같은 것을 지적할 시대나 단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레닌

한국인에 관한 부고 기사는 6건이 선별되었다.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 노무현, 김대중, 김정일 순이었다.

 

1965년 7월 19일자 이승만 부고 기사이다. 

 

“이승만/ 1875년 3월 26일~1965년 7월 19일/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이승만/망명 중 별세/

 

하야했던 이 전 대통령의 시신은 서울로 옮겨져 안치될 예정/뉴욕 타임스 특보,

 

이승만

7월 19일 호놀룰루—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오늘 이곳 호놀룰루에서 별세했다. 향년 90세. 하와이로 망명한 후 건강이 악화되어 병상에 누운 지 3년 하고 4개월이 지나던 참이었다. 뇌졸중은 결국 마우날라니 요양원에 입원 중이던 ‘한국 호랑이’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고향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다.”  이어 이승만의 일생에 관한 기사가 신문 1쪽 분량 정도로 이어졌다.

 

2009년 5월 서울발 기사로 개재된 신문 1쪽 분량의 노무현 부고 기사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승리를 자신의 가장 큰 성취로 평가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재, 부정부패, 그리고 ‘보스정치’로 물든 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에서 노무현은 지역적 지지 기반이나 파벌, 대기업과의 강한 유대 없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미국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였다. 노무현 부고 기사에서 한국 언론의 행태를 꼬집는 글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 소환에 응하자 언론사들은 헬리콥터를 투입해 노 전 대통령이 서울로 이동하는 내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한민국에서 전임 대통령의 상경 과정을 생중계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었으며, 이는 노 대통령을 심각하게 모욕하는 행위였다.”

 

책 서문에서 편집자 윌리엄 맥도널드는 이렇게 썼다.

 

“이런 인물들이 꼭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거나 인간으로서 더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좀 더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 기삿거리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편집자의 말과 달리, 부고 기사들은 상세한 정보를 담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오스트리아 태생 작곡가이자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의 부고 기사는 제목에 고작 ‘작곡가로도 알려짐’이라고만 보도되었다. 칼 마르크스의 사망 기사는 1883년 제3면에 600여 단어만나왔다. 제임스 딘의 부고는 133단어에 불과했다. 그의 사망 당시엔 지금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133단어는 너무한 듯하다. 

 

부고 기사가 아예 나가지 않은 저명 인사도 수두룩했다.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에 대한 부고 기사는 아예 없다. 문학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실존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프란츠 카프카, 안톤 체호프, 샬롯 브론테, 에밀리 디킨슨, 실비아 플라스에 대한 기사도 없었다. 역시 그들이 사망한 19세기 당시 그들 작품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그의 생전에 출판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키르케고르와 체호프도 20세기 초까지는 그리 유명한 작가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록 스타 짐 모리슨이 1971년 27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도 고작 300여 단어의 부고 기사가 전부였다. 금융재벌 J. P. 모건의 부고 기사는 몇 쪽에 걸쳐 개재되었지만, 전설적인 투수 ‘사이영’의 부고 기사는 한 문단이 채 되지 않았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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