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를 거듭 강조했다. 추경과 민생 법안 처리 등을 위한 7월 임시국회 소집 논의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당·청이 한목소리로 야당에 대한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1시간30분 동안 청와대에서 진행된 오찬 자리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이렇게 좋은데 왜 재정을 더 투입하지 않느냐며 문제 제기를 한다”며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추경 처리에 반대하는 야당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추경과 일본 수출 규제 대응에 대해선 여야가 협치를 해줄 것을 주문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과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국내 산업에 대한 우려가 커진 만큼 여야가 협치로 추경 처리를 해줄 것을 강조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대화를 주도하기보다 현안에 대한 참석 의원들의 의견과 민원사항을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도 추경 처리가 답보상태에 놓인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신속한 처리를 다짐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90일째 표류 중인 추경에 대해 “경제 한·일대전이 시작됐는데, 대통령께서 중심을 잡고 대처해 주셔서 국민들이 든든해한다. 우리도 이 문제를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면서도 “다만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추경이 해결됐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이 원내대표는 하반기 국회 운영 전략으로 7월 내 추경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경제활력과 민생안정에 주력하겠다고 밝히며, 민생입법추진단 등을 통해 서비스업발전기본법, 빅데이터 3법 등 59개 중점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 대변인은 “다른 참석자들도 추경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강력 규탄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김영호 의원은 “일제 침략에 맞서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달려가 부당성을 알렸던 것이 100여년 전 일이다. 그때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일본의 부당함과 우리의 정당성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표창원 의원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번에야말로 ‘제2의 독립’, 단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여론을 전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오찬 참석자들은 원내대표단의 제안으로 ‘노타이’ 차림으로 참석했고, 식사 도중 화기애애한 대화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와 여당의 추경 압박에 대해 제대로 된 추경안을 제출하라고 반박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3000억원이면 예비비를 활용해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데도 백지수표 추경안을 들이민다”며 “선택근로제나 각종 규제완화 등 진지하게 논의해서 가져오면 우리 당이 초스피드로 처리해 주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귀전·김달중·곽은산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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