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김재원(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의원이 추가경정예산안 협상이 이뤄지는 도중 술을 마신 모습으로 나타나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 위원장은 2일 "할 말 없다"며 외면했다.
김 의원은 지난 1일 오후 11시10분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회의를 한 뒤 다소 얼굴이 벌게진 모습으로 나왔다.
김 의원은 추경안 협의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빚내서 추경하는 건데 우리 당에선 빚을 적게 내자, 국채 발행 규모를 줄이자, 민주당에선 적어도 3조 이상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브리핑 도중 횡설수설하거나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브리핑을 하던 도중 서둘러 국회를 나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술 냄새가 나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음주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김 위원장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어젯밤 김 위원장은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예산 감액 규모와 방법을 놓고 몽니를 부리며 예정된 예산처리 기일을 지키지 않았다"며 "더욱이 연락을 끊고 사라진 동안 몸이 비틀거릴 정도로 음주를 했다는 사실마저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이 대변인은 "김 의원의 행위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며 "나아가 스스로 감당하고 있는 직책이 본인이 한 행위에 비추어 걸맞은 것인가를 엄숙하게 돌아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위원장이 만취 상태로 '음주추경 심사'를 하는 추태를 벌인 것"이라며 "비틀거리는 예결위원장에 나라 살림도 비틀거리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주취자(酒醉者)"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헤롱헤롱한 상태에서 국가 예산을 심사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예결위원장은 물론 의원으로서도 함량 미달이다"라며 "김 의원은 예결위원장직을 내려놓아라"고 촉구했다.
김재두 민주평화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김 위원장은 국회 예결위원회에서 포로가 된 추경을 슬기롭게 구출할 책임 있는 장본인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그동안 지역구로 줄행랑치고 이리저리 꽁무니를 빼더니 음주로 끝판을 장식했다.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한국당과 김 위원장은 즉각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위원장직을 즉각 국민 앞에 반납하라"고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실제 예결위원장이 그 시간에 술까지 마셨다고 한다면 본회의를 열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을까. 이는 추경 심사를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어제 한국당이 임하지 않았다는 아주 단적인 증거"라며 "예결위원장으로서는 사실 자격 상실이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재원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특보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대표적인 친박(친박근혜)계 3선 의원이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경북 군위·의성·청송에서 당선돼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7년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대선주자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 기획단장과 대변인을 맡았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한 뒤 중국 베이징대 국제대학원 교환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 공천을 받아 재선에 성공,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 법률대리인 역할을 하며 그의 복심을 가장 잘 아는 친박 핵심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정무수석이었던 김 의원은 4·13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가 친박계 인사들을 당선 가능성이 큰 지역구에 공천시키기 위해 불법 여론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선거 비용 중 5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의원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7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총리실 등에서 근무하며 행정 경험을 쌓았고, 7년 뒤에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도 활동했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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