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 1000만원을 꿔준 사실은 하늘이 알고 땅이 다 아는데, 어떻게 소송에서 질 수가 있는가요?” 하고 울부짖는다. 소장을 보면 원고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지만, 답변서를 보면 또한 피고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법관은 단지 제3자인 심판으로서 증거에 의해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그런데 증거에 의하여 사실관계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매우 많다. 이때 법관은 재판을 거부할 수 있는가. 모든 국민은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가 있고,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책무가 있으므로 법관은 재판을 거부할 수 없다.
법관이 증거에 의해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입증책임에 의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입증책임이란 소송에서 사실관계를 증명할 책임이 있는 자가 이를 증명하지 못할 경우에 부담하는 패소의 위험을 말한다. 따라서 이 책임을 누가 부담하는가는 소송에서 매우 중요하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빌려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 차용증, 무통장입금증이나 은행거래내역, 어음 수표의 배서내역, 증인 등의 입증방법으로 대여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단지 5만원권 현금으로 1000만원을 빌려주었으나 아무런 서류나 본 사람이 없으면 대여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것으로 된다.
한편 돈을 꾸었다가 갚았다는 경우에는 입증책임이 변제자에게 있다. 변제자가 영수증이나 은행거래내역 또는 증인 등의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다면 또 갚아야만 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소송에서 입증책임이 있는 사람이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패소하게 된다.
채권채무관계 등 법률관계에서는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서면이나 은행거래내역 또는 최소한 증인을 확보해 두는 것이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서 무난하다. 예로부터 동기간에는 그냥 주었다는 생각으로 빌려주라는 말이 있듯이, 명백한 증거가 없는 대여관계는 그냥 잊어버리는 편이 인간관계나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경환 변호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