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빛 피부에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솜털, 잔뜩 웅크린 몸’
안녕하세요? 저는 귀여운 꽃벵이입니다. 언제 피는 꽃이냐고요? 아… 저는 식물이 아니라 동물, 그러니까 아기 흰점박이꽃무지입니다. 붉은점모시나비 같은 나비냐고요? 아휴, 정말. 그래요. 저는 굼벵이입니다, 굼벵이. 여러분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며 하등동물로 무시하고, 징그러운 벌레 취급이나 하는 그 굼벵이요. 사실 저도 전기자동차나 태양광발전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구온난화 시대의 주목받는 스타입니다. 그러니 굳이 정부가 공모까지 해서 꽃벵이란 애칭을 지어주지 않았겠어요? 식품계 데뷔 6년차에도 ‘만년 기대주’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함정이죠. 그래서 오늘 저는 왜 저의 스타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5년래 1590% 성장?
제가 미래 먹거리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 과학자들이 ‘소 방귀도 온난화 주범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부터죠. 처음엔 저도 콧방귀 뀌었죠. 그런데 2013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왜 곤충을 먹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200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를 내놓은 걸 보니 ‘나에게도 볕들 날이 찾아오는구나’ 싶더군요.
같은 동물끼리 험담하는 것처럼 들릴까 조심스럽습니다만, 가축을 기르면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은 상당합니다. 돼지고기 1㎏을 얻는 데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최대 1.1㎏입니다. 소는 3㎏이나 되고요. 저희 곤충의 배출량은 소나 돼지의 1% 정도 됩니다. 특히 소 방귀에 많은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배나 강력한 온실가스인데 전 세계 배출량의 35∼40%가 축산업계에서 나옵니다.
곤충 중에 ‘메탄 방귀’를 뀌는 녀석은 바퀴벌레, 흰개미, 풍뎅이 정도인데 한국에서 식재료로 등록된 친구들은 아닙니다. 분뇨 때문에 민원이 빗발칠 염려도 없죠. 불포화지방산이나 필수아미노산 같은 영양성분이 여느 육류 이상이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니 ‘단백질이 필요하세요? 그럼 몸에 좋고, 환경에도 좋은 곤충을 드세요’가 된 거죠.
한국은 FAO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인 2010년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2012년 383개소였던 곤충 사육농가는 지난해 2318개소로 500% 이상 늘었는데, 전국 양돈농가(약 6100가구)의 3분의 1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2015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전체 곤충시장이 2020년에 5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는데, 특히 식용 분야가 1590%라는 대단한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장밋빛 미래 같죠. 정말 그럴까요?
◆“더 많은 연구개발·표준화 절실”
이경철 그린에듀텍 대표는 서울 한 게임회사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가족 간병을 위해 장기휴가를 내고 경북 예천에 내려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식용곤충사업을 하게 됐는데요, 그는 겉에서 보는 것과 다른 속사정을 말합니다.
“식용곤충사업을 시작하는데 초기 투자비용은 198㎡(60평) 기준으로 5000만원, 요새는 3000만원까지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두 명이 흰점박이꽃무지를 키우면 연소득이 3500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판로만 뚫으면 된다’는 생각에 우후죽순 사업에 뛰어들죠. 그랬다가 식품안전 문제나 병충해로 폐업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습니다.”
그는 시급한 과제로 규격화(매뉴얼화)를 꼽았습니다.
“곤충은 참나무를 발효시킨 톱밥을 먹어요. 만약 참나무가 중금속에 오염됐다면 이걸 먹고 자란 곤충도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그런데 사육기술이 정형화돼 있지 않다 보니 뒤늦게 곤충에서 비소 수치가 높게 나와 팔지도 못하고 그대로 문을 닫거나 빚을 지는 사례가 많아요. 곤충 농가의 폐농은 보상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사육장과 씨벌레, 먹이, 건조방식에 대한 규격화가 필요하죠.”
농가의 자체 노하우에만 의존한 사육은 사업 확대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철수네 갈색거저리(밀웜)는 120도 7기압으로 5분간 스팀 살균하면 균이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동수네 밀웜은 150도 9기압으로 10분을 살균해도 균이 안 죽어요. 철수네와 동수네 사육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갈색거저리를 받은 공장은 도저히 멸균·살균조건을 맞출 수가 없겠죠.”
예천군에는 곤충 농가가 30곳, 생산량도 30t가량 됩니다. 농가당 1t씩 생산하는 셈이죠. 그런데 곤충 1t을 가루로 내면 150㎏밖에 안 된다네요. 곤충으로 가공식품을 만들려면 t 단위로 분말이 필요하니 여러 농가와 계약이 돼야 하는데 사육법이 표준화돼 있지 않으면 시장이 커지기도 어려운 거죠.
물론 국립농업과학원이 발간하는 ‘식용곤충 표준사육 지침서’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장수풍뎅이 애벌레 건조방법의 경우 ‘장기보존 및 이용효율을 높이기 위해 열풍건조 또는 냉동건조하여 보관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도로만 언급돼 있습니다.
김수희 경민대 교수(호텔외식조리학과)는 “밀웜을 제외한 다른 곤충은 이취가 난다거나 색깔, 수분함량이 제각각일 때가 많다”며 “건조와 절식(식용으로 잡기 전 2∼3일간 굶기는 것) 방법, 수확시기 등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방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도 병원균에 감염돼 폐사하지만 예방백신을 맞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녹강병과 백강병인데, 일종의 곰팡이병이라고 보면 됩니다. 귤 상자 안에서 곰팡이가 핀 귤 하나를 그냥 놔두면, 하루 만에 여기저기 곰팡이가 번지는 걸 본 적 있으시죠? 이 균도 한 번 생겼다 하면 무서운 속도로 번집니다.
얼마 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서 미생물을 이용해 방제 균주를 만들어 민간에 기술이전을 했는데 이전까지는 락스 같은 약제를 썼다고 하네요.
유상미 자원관 환경미생물연구팀 전임은 “뉴스만 보면 곤충산업이 팽창하는 것 같지만, 실제 농민이 느끼는 건 좀 다른 것 같다”며 “국가 연구개발(R&D) 인력이 표준화된 사육기술을 개발해 민간에 이전하는 것이 좀 더 활성화되면 곤충산업이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급 쪽의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큰 장벽이 남습니다. 바로 우리를 향한 여러분의 혐오감이죠. “저희가 얼마 전 한 엑스포에 참여했는데 ‘곤충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니까 아무도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프로틴(단백질) 아이스크림-달걀 3개 분량’이라고 써 붙였더니 없어서 못 팔았어요.”(이 대표)
저희를 징그럽게 여기는 이들이 많기도 하고, 매스컴에서도 ‘곤충요리=엽기’ 이미지를 부각해 왔죠. 한 영화에 나온 ‘바퀴벌레 단백질 블록’이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벌칙으로 등장하는 곤충요리가 그런 예죠.
앞서 농촌경제연구원이 내년 곤충시장 규모를 5000억원으로 추산했다고 했는데요, 그중에서 식용곤충 규모만 1014억원(20%)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식용곤충 판매액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117억8000만원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추계를 낼 즈음 식용곤충 등록이 기존 3개에서 7개로 늘어날 예정이었다”며 “그래서 식용 시장이 활짝 열릴 것으로 내다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식용곤충을 기르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식품원료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2014년 이전까지는 전통적으로 섭취해 온 메뚜기나 맥강 잠, 식용누에만 등록돼 있었죠. 2016년부터 밀웜 애벌레와 쌍별 귀뚜라미, 장수풍뎅이 애벌레, 그리고 제가 등록됐고요.
이 관계자는 “지난해 판매액이 전수조사된 것은 아니라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지만, 당장 내년에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는 사실 좀 어려워 보인다”고 했습니다.
제가 식품계에서는 그래도 ‘기후변화 시대의 역군’으로 평가받는데, 진짜 주역이 되는 길은 멀고 험한가 봅니다.
이번 주말엔 고기 대신 꽃벵이 만두는 어떠세요?
◆전 부칠 때 ‘애벌레 분말’ 살짝 섞어보세요
식용 곤충을 대형마트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까지 식용 곤충은 근육을 키우기 위해 먹는 단백질 보충제나 환자식에 주로 쓰여 저변이 넓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곤충을 먹기란 어렵지 않다.
인터넷에서 식용 곤충을 검색하면 건강식품이나 에너지바 등 몇 가지 곤충 식품이 뜨는데, 말린 고소애(갈색거저리 애벌레)는 통째로 먹기에 가장 부담이 없다. ‘벌레’라는 선입견만 없으면 감자깡이나 새우깡처럼 생긴 데다 실제로 말린 새우 맛이 난다.
혐오감을 떨쳐내기 어렵다면 분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밀가루에 비하면 꽤 비싼 편(100g당 1만∼1만5000원)이지만, 부침개나 쿠키 만들 때 들어가는 양이 많지는 않아 여러 번 쓸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요리를 먹어보면 특별히 ‘곤충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분말 등을 이용한 조리법은 국립농업과학원이 발간한 책자에 소개돼 있는데, 이 또한 인터넷에서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다.
김수희 경민대 교수(호텔외식조리학)는 “요즘에는 곤충, 특히 고소애 분말은 매우 잘 나오는 데다 지방이 제거된 탈지분말이라 단백질 함량이 높다”며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예천=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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