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의역 사고 청년의 목숨값으로 ‘고용세습’ 잔치판을 벌인 것이냐.”
지난해 10월 당시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비대위 회의에서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구 서울메트로)의 노조와 정부의 유착 문제를 이같이 지적하며 목청을 높였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은 당시 서울교통공사가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김군이 열차에 치여 안타깝게 사망한 이후 수습대책으로 재직자의 친인척을 대거 고용했다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 감사를 기다려 봐야 한다고 맞섰다.
정치권 안팎에서 공방이 거셌던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의혹이 1년 만에 사실로 드러나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감사원은 30일 서울교통공사 등 5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정규직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서울시가 구의역 사고 수습대책으로 위탁업체 직원을 직접 고용하도록 하자 서울교통공사는 재직자의 친인척 15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했다”고 밝혔다. 이를 포함해 재직자의 친인척이 비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됐다가 2017년 이후 정부 및 서울시 정책에 따라 일반직(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가 대거 확인됐다.
감사 대상에는 의혹이 제기된 기관 가운데 정규직 전환규모가 큰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전KPS주식회사,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이 선정됐다. 감사 결과 5개 기관의 정규직 전환자 3048명 가운데 10.9%(333명)가 재직자와 4촌 이내 친인척 관계로 나타났다. 정규직 전환자를 대상으로 기관별 재직자 친인척 비율을 따져보면 인천국제공항공사 33.3%(2명), 한전KPS주식회사 16.3%(39명), 서울교통공사 14.9%(192명), 한국토지주택공사 6.9%(93명), 한국산업인력공단 4.3%(7명) 순이었다.
특히 서울교통공사는 192명으로 규모 측면에서 심각성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자회사 재직자와 최근 10년간 전적자(퇴직 후 위탁업체 등에 취업한 사람), 최근 3년간 퇴직자까지 포함하면 이들과 친인척 관계인 일반직 전환자는 19.1%(246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친인척의 추천으로 면접만 거쳐 채용되는 등 ‘불공정’ 경로를 통해 입사한 사람까지도 여과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문제도 지적받았다.
감사원은 서울시장에서 인사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서울교통공사 김태호 사장의 해임 등 채용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5개 기관의 직원 등 총 72명에 대해 신분상 조치를 요구했다. 이 중 29명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 요청을 하거나 수사 참고자료로 통보했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감사원 감사의 후속조치를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연내에 공공기관 채용에 대한 세 번째 범정부 합동 실태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또한 채용비리 발생 원인을 심도 있게 분석해 분야별 맞춤형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감사원의 발표 시간에 맞춰 강태웅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이날 오후 직접 브리핑을 열어 반박하면서 향후 치열한 ‘기싸움’을 예고했다. 서울시는 “이해가 부족한 감사 결과”라고 비판하면서 “단지 공사 직원의 친인척이라는 이유 자체가 불공정의 근거가 될 수 없고, 명백한 법령 위반 등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과 국가인권위법 등에 따라 오히려 차별적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안병수·송은아 기자, 세종=이천종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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