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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의 ‘가을 리듬’

제2차 세계대전은 예술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의 예술가들이 전쟁 전후에 걸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그에 따라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바뀌었고, 194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예술가를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라는 감성적 경향의 미술이 등장했다. 사람들이 과학문명의 발달을 가져온 능력으로 무기도 만들어 인간을 살상했던 비극적 상황을 목격하면서 이성적 합리적 사고에 대한 불신 풍조가 생겨난 탓이었다.

그 시작을 연 예술가가 잭슨 폴록이었다. 폴록은 기하학적 추상의 선명한 윤곽선이나 정형적으로 닫힌 형태, 평면적인 색채 등의 특징에 반발했다. 대신 느슨하면서도 빠른 붓놀림, 끊어진 색채 자국과 리듬, 물감의 불균등한 밀도와 채도를 화면 가득 채운 자유분방한 형태의 작품을 제시했다.

‘가을 리듬’은 거대한 캔버스에 복잡한 미로처럼 얽힌 색과 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폴록이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막대기에 물감을 묻혀 뿌리기도 하고, 물감통을 들고 캔버스 안에 들어가 붓고 쏟아내기도 했다. 속도를 늦추면 색선이 굵어지고, 빠르게 하면 색선이 가늘어지며, 더 빠르게 하면 색선이 뚝뚝 끊어지는 식이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을 연상케 하지만 폴록의 작품에서는 칸딘스키와 달리 그림 그리는 예술가의 행위가 강조된다. 폴록은 예술가의 행위가 그림을 그리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예술가의 행위가 작품의 구성요소가 되게 했고, ‘액션 페인팅’이라는 용어도 생겨나게 했다.

그후 미국 정부가 나서서 폴록의 작품을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으로 분열된 유럽을 향해 자유의 이미지라는 미국적 경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전했고, 폴록은 미술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경제적·정치적 성장을 이룬 미국이었지만 예술과 문화에서는 아직 유럽에 비해 변방이라는 의식이 작용한 탓도 있었다. 예술과 문화가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의 성장이나 규모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방증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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