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은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결심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입니다. 감독과 촬영감독, 조명감독이 만들어 낸 시네마스코프의 압도적인 화면 구성, 카메라 움직임과 활력, 미술과 조명의 과감한 선택, 종합적인 미장센이 저로선 한국영화에선 처음 보는 수준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뛰어난 영화가 만들어졌구나’ 깨닫고, 노력하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거죠.”(박찬욱 감독)
지난 27일 영화의 날,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박찬욱(56) 감독이 친애하는 한국영화로 꼽은 이두용(78)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을 상영하고, 박 감독이 영화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행사에는 좌석 300여석이 거의 들어찼고, 이 감독도 참석했다.
‘최후의 증인’은 6·25전쟁 전후 살인 사건의 진실을 좇는 오병호 형사(하명중)의 여정을 그린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봐도 울림을 주는 명작이다. 이 영화 재조명에 기여한 박 감독은 “‘하녀’와 함께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한국영화”라면서 영화와의 인연을 설명했다.
“제 또래 해외 감독들처럼 어린 시절 자국 선배 감독의 강한 영향 아래 영화 세계를 형성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죠. 다른 나라 감독들이 부러워요. 가져 본 적 없어 잃어버린 것도 아니지만 상실감 같은 걸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영화 전범의 세계를 접한 건 대학에 들어간 다음이었어요. 그 시기 좋은 한국영화가 없었던 건 아닐 텐데 얼마 안 되는 훌륭한 영화들이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그게 그때 현실이었어요. 미국, 이탈리아 영화만 좋아하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한국에도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얼마나 놀랍고 감동을 받았을지 상상하시기 힘들 겁니다.
‘최후의 증인’을 본 건 우연이었어요. (1982년) ‘화녀 82’를 극장에서 보고 충격적인 경험을 한 번 한 이후에 다른 작품을 찾아 헤매다가 남산의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 전신) 시사실을 찾아갔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이 감독님의 ‘피막’과 ‘최후의 증인’을 연달아 상영했습니다. 김기영 감독님 세계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한국적인 것, 한국의 역사와 전통, 한국인의 심성이 뭔지, 좀 더 근원적인 한국성을 탐구하는 영화들입니다.”
이두용 감독은 “잘 만들었는진 모르겠는데 박 감독의 과찬에 마음이 착잡하다”면서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아픔을 주제로, 내 생각대로 만든 유일한 영화”라고 화답했다.
박 감독은 “완벽한 상영본은 158분짜리인데 지금 4분이 없어진 거고, 개봉 당시엔 120분, 비디오는 90분이었다”며 “90분짜리로밖에 볼 수 없어 사람들이 이 영화의 진가를 알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설적이게도 (개봉 당시) 흥행이 안돼 원본 필름 상태가 좋아 복원판을 우수한 상태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후의 증인’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 영향을 미쳤다. 박 감독은 “‘최후의 증인’ 원작 소설을 쓴 김성종 작가의 여러 소설에 오병호 형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오 형사는 한국 추리소설이 별로 없던 시절 장르 소설의 영웅이었다”며 “오 형사의 비극적 죽음이 깊은 인상을 줘서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은 ‘최후의 증인’을 생각하며 구상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는 한국 고전 영화에 관심을 당부했다.
“‘최후의 증인’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영향, 아픈 이야기들이 어떻게 미스터리 스릴러란 장르와 만나 형상화되는지에 대한 가장 뛰어난 예입니다. 이 감독님, 정일성 촬영감독님을 비롯한 당대 충무로 최고 실력자들이 어떤 간섭도 없이 자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왔는지 그 감동을 나눌 수 있어 기뻤습니다. 세상에 알리고 싶은 영화를 만나면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려 합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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